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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 9월이 오면

사과나무에 빨갛게 익은 사과들이 주저리주저리 달려있다. 막 따온 옥수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사람들은 옥수수 껍질을 벗겨 빈 박스 통에 넣기 바빴다.

무인 판매 과수원인 이곳에는 옥수수뿐만 아니라 각종 과일과 야채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과수원 한쪽에는 노란 해바라기 꽃들이 파란하늘 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 1일 노동절 휴일에 스카지트 벨리에 있는 무인 판매 과수원을 찾았다. 수년전만 해도 이곳은 주인도 없이 양심껏 계산하여 금고에 넣게 되어있어 아직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웃이 있다는 것에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경고판이 붙어있어 세상이 갈수록 험해지고 각박해지는 것을 실감했다.

벌써 9월이다. 더구나 며칠 후 8일이면 한민족 고유명절인 추석이다. 한국은 지금 추석 연휴로 가슴 설레고 고향 찾을 준비로 분주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이민생활의 추석은 공휴일이 아니기에 이날도 쉬지 않고 직장에서 일터에서 일과 만난다.



따가운 햇살이 눈부셨고 풍성했던 고향의 추석이 생각난다.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시외버스를 타고, 산을 올라가 성묘를 했던 추석. 논에는 벼들이 황금빛으로 넘실거리고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시골길 옆 밭에는 옥수수, 조, 수수, 콩 등 온갖 곡식과 채소들이 무르익고 있었다. 황소가 여물을 먹는 초가집 지붕과 흙 담 위에는 커다란 노란호박이 넝쿨과 함께 달려 있었다.

여름도 훌쩍 지나고 추석은 보름달에서나, 마켓에서 파는 송편 한 꾸러미에서나 만나는 이민생활이어서 9월이 오면 아쉬움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오히려 9월이 되면 곡식들과 과일 등 온갖 만물들이 결실을 맺는가하면 특히 이번 주부터 시애틀에는 시학스 풋볼 열기가 뜨겁게 불어와 우리들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시학스가 프랜차이즈 38년 만에 지난해 처음으로 제48회 수퍼보울을 차지해 우리들을 열광케 했는데 다시 올해 시즌이 4일 킥오프되어 우리를 흥분케 했다. 시애틀에서 벌어진 그린베이 팀과의 경기에서 시학스는 수퍼보울 챔피언다운 놀랄만한 실력으로 첫 경기에서 36대 16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TV 사운드를 크게 틀어놓고 응원하고 열광했다. 풋볼 경기를 보면 우리 편이 공을 가지고 뛸 때 상대 선수들이 마치 맹수처럼 달라붙어 태클을 하지만 그 속을 이리저리 뚫고 나갈 때 터치다운에 성공하고 가장 기뻐하고 환호한다.

우리 인생에서도 산 넘어 산으로 어려운 일들이 이어지고 있을지라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난관들을 뚫고 헤쳐 나갈 때 기필코 터치다운을 하고 언젠가는 수퍼보울을 차지하는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9월이 오면 뭔가 여름이 지나고 벌써 한해도 다 지나는 것 같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앞으로 비 많이 오고 어두운 가을과 겨울의 칙칙한 기분도 벌써 든다.

그러나 9월부터 갖게 되는 여러 기쁨과 즐거운 일들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드디어 온 9월에 감사할 수 있다. 결실의 계절 9월을 맞아 우리 삶속에서도 더 많은 기쁨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어지길 바란다.

시학스 첫 경기가 압승으로 끝난 4일 밤, 시애틀의 밤하늘에 떠있는 달은 반달보다 조금 컸다. 며칠 후면 이 달도 휘영청 밝은 추석 보름달이 될 것이다.

우리들의 현재 어려운 삶도 예전 경기 좋았을 때에 견주어보면 반달처럼 아직 차오르지 않았지만 다시 보름달처럼 경기침체로 잃어버렸던 것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시애틀에 9월이 오면 이젠 80-90도 넘던 뜨거웠던 여름을 보낸 아쉬움보다는 이제 남은 늦여름의 더한 뜨거움으로 많은 결실을 맺는 더 밝고 더 기쁜 날들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 올 것이다.


이동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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