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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감자 (데스크 칼럼)

정확하다. 비가 온다. 여름철 그렇게 맑았던 날씨가 가을 첫날부터 비가 내린다.

계절의 바뀜이 정말 정확하다. 마지막 날 84도까지 올랐던 여름이 가고 이번 주부터 가을이 시작되니 첫날부터 기온이 60도 대로 떨어진다.

비,비,비, 아침에 출근할 때, 밤에 잘 때도 후드득 빗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얼굴, 머리, 몸에 비를 맞으며 시애틀에 가을이 온것을 실감한다.

비뿐만 아니라 아침저녁 더 어두워지고 더 써늘해 진다. 특히 벌써 나무 잎들이 놀랍게 노란색이나 붉은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가을을 문인들은 어떻게 묘사할까? 한국문인협회워싱턴주지부 가 최근 발간한 ‘시애틀문학’ 7집을 읽어봤다. 공순해씨는 '가을은 호두껍데기 속의 난수표다"라고 어렵게 표현했다. 안문자씨는 가을에 심는 나무로 남편의 사랑을 그렸고, 한홍자씨는 ‘가을비가 창틀을 치고 간다’고 말했다. 김종박씨는 희생까지 다짐하는 낙엽의 생각들을 신앙적으로 썼다.

문인들은 가을철 나무와 낙엽, 비를 많이 생각했지만 나는 이 가을 들어 엉뚱하게 감자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84도로 뜨겁고 파란하늘이 아름다운 마지막 여름날이 아쉬워, 지난 주일 아내와 함께 스카지트 카운티 야채 농장에 갔다. 이곳은 유픽 농장이어서 옥수수, 감자, 호박, 각종 야채 등을 직접 밭에서 따서 사는 재미가 있어 좋았다.

관심을 끄는 것은 감자 캐기였다. 맨 땅같은 밭에서 삽으로 밑에 있는 줄기들을 파 올리니 한꺼번에 땅속에서 감자들이 5,6개가 줄기에 걸려 올라왔다. 알이 제법 크고 굵은 것도 많았다.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평생 밭에서 감자 캐는 것을 본 적은 두 번째였다.

재미있게 캐어 집으로 가져온 감자들은 여름철 내내 땅속에서 자라다 드디어 이 세상에 나왔고 감사하게 건강 식품으로 우리 집 식단을 장식하게 되었다.

수박, 참외, 복숭아 등 다른 과일들은 여름철 인기를 끌었지만 나의 감자는 그 좋은 여름철에도 어두운 땅속에서 묻혀 있다가 여름 마지막 날 드디어 지상으로 올라왔고 가을에 들어서야 빛을 보고 맛있고, 건강한 영양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가을이 오니 여름이 지난 것이 아쉽고 겨울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땅속에서 나온 감자들처럼 우리들의 삶속에서도 지난 여름철에는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었던 감자 같은 알찬 결실들이 이 가을철에 땅속에서 주저리주저리 달려 나오길 바란다.

지난 여름철에도 경제적으로나 건강, 관계 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인내해온 그 여름철에 척박한 땅속에서도 무르익은 감자처럼 다시 잃었던 것들의 몇 배가 우리들에게 달려 나온다고 믿고 소망과 용기의 감자 줄기를 삽으로 파 올려보자.

감자도 그동안 많은 시련을 인내했을 것이다. 여름철 사과, 배 등은 햇살 뜨겁고 바람 좋은 땅 위에서 자랐지만 감자는 어둡고 벌레 있고 오물이 있는 땅속에서도 견디며 자랐기 때문에 한 개도 아니고 몇배나 되는 열매들을 맺었다.

우리 삶속에서도 보이는 어려운 환경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감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언젠가 바라는 것들이 실상으로 감자처럼 알차고 기쁘고 행복하게 주렁주렁 나올 것으로 믿는다.

비오고 어두운 가을철 우울한 시간이 올 때면 지난 여름철 땅속에 있었던 감자들처럼 깊은 가슴에 간직되어 잊고 살았던 아름다운 낭만의 추억들도 꺼내보며 다시 소망과 용기를 갖자.

우리 가정에서도 남편이 능력 없다고, 우리 자녀들이 아직 공부 못한다고 비난 하지 말자. 감자처럼 언젠가 소망과 용기의 땅속에서 자라나는 알 감자들을 캘 것으로 믿고 사랑과 격려의 물과 거름을 주자.(이동근 편집국장)


이동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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