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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채수호/자유기고가

3월26일은 민족의 영웅 안중근이 순국한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아홉시 만주 하얼빈 역두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걸어가고 있을 때 러시아군 의장대 뒤에 서있던 안중근은 상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브라우닝제 7연발 권총을 꺼내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탕 탕 탕’ 세발의 총성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는 수행원들의 팔에 기대어 쓰러지고, 안중근은 러시아군 병사에 의해 제압 당해 땅바닥에 눕혀진다. 쓰러지기 직전 안중근은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펼치며 러시아어로 ‘코레야 우라(대한국 만세)’를 외친다.

하얼빈 일본 영사관에 감금되어있던 안중근은 일주일 후 중국내 일본의 점령지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다. 안중근은 자신이 한국 의병 참모중장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하며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이므로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다음과 같이 그를 죽인 이유를 밝혔다.



"한국의 민황후를 시해한 죄, 고종을 폐위시킨 죄,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군대를 해산시킨 죄, 교육을 방해한 죄…”

이토 히로부미가 저지른 열다섯 가지의 죄목을 조목조목 밝히는 안중근의 당당하고 남아다운 기개(氣槪)에 일본 관헌들마저 그를 경외(敬畏)하여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

안중근은 1879년 9월2일 황해도 해주에서 부 안태훈과 모 배천조 사이에 3남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용맹했던 안중근은 한학(漢學)과 함께 조선의 역사와 만국 역사를 읽었으며 틈틈히 무예를 익혀 사격술을 연마하였다.

16세 되던 해에 1년 연상의 김아려 규수와 결혼하였으며 후에 현생, 분도, 준생 등 2남 1녀를 두었다. 19세 때 프랑스 신부 ‘빌렘’으로부터 ‘토마스’ 란 영세명으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된 안중근은 신부로부터 불어를 배우며 서양의 신사상과 접하였다.

1904년 평양에서 석탄상을 경영하던 안중근은 이듬해 을사 보호조약으로 일본에 국권이 침탈당하는 것을 보고 상점을 팔아 삼흥학교를 세우고 인재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백년대계인 교육만으로는 극도로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 세울 수 없다고 판단한 안중근은 무장투쟁을 벌이기로 결심하고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을 조직하니 그의 나이 28세 때의 일이다.

이듬해 안중근은 대한의군참모중장의 자격으로 1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국경을 넘나 들며 일본군과 수십 차례의 전투를 벌였다.

안중근은 1909년 열한명의 동지들과 함께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조직하여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맹세하고 손가락을 끊었으며 그해 10월 마침내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자서전과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다. 한중일 3국이 대등한 자격으로 군사,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문에 상호 협력하며 동양평화를 유지해 나가자는 동양평화론은 일본을 맹주로 한 대동아공영권과는 반대되는 사상으로 지금까지도 100년 앞을 내다 본 선견지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안중근은 서예에도 뛰어나 생전에 많은 유묵을 남겼다.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국가위기 때 마음을 졸인다), 일일불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등 그의 유묵은 왼손 무명지가 잘린 손바닥 도장과 함께 한국인의 얼을 일깨우는 아이콘으로 남아있다.

불꽃같은 서른 한 해를 살다간 민족의 영웅 안중근이 순국한지 10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그의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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