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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LA폭동과 대럴 게이츠

박용필/객원 논설위원

경찰을 일컬어 흔히 '가늘고 푸른 선(the thin blue line)'이라 부른다. 경찰 유니폼에서 비롯된 말이다. 1980년대 개봉된 '신 블루 라인'이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아예 경찰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영화는 경찰관 살해 혐의로 체포돼 처형직전에까지 내몰린 한 시민의 무고함을 입증해 낸 다큐성 작품이다. '죽기 전 꼭 봐야 할 명화 1001편'에 올라있을 정도로 진한 감동을 줬다. 경찰의 사건 조작과 음모 그리고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명작이다.

용의자를 기소한 검찰은 배심원들을 향해 이런 말을 던진다. "(규모는) 작지만 깨끗하고 강한 경찰. '가늘고 푸른 선'은 이 사회를 무정부주의자들과 폭력배들로부터 보호해주는 마지막 저지선이다." 검사의 이 한마디에 배심원들은 용의자에게 사형 평결을 내린다.

검사의 말처럼 소수 정예의 준군사조직으로 운영됐던 곳이 바로 로스앤젤레스 경찰국(LAPD)이다. 개혁의 주체는 윌리엄 파커 국장. 그의 재임기간은 1950년부터 1966년까지 무려 16년이다. 부패를 청산하고 '정치경찰'을 내쫓고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LAPD의 기틀을 잡은 인물이다. LAPD 본부건물을 '파커센터'로 이름지은 것도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서다.



파커의 수제자가 대럴 게이츠다. 추종자들은 그를 '신 블루 라인'의 전형으로 꼽는다. 파커의 운전기사로 첫 발을 내디딘 그는 보스의 총애로 고속 승진을 거듭 LAPD 총수자리를 꿰찬다. 파커의 철학을 이어받은 그는 한 술 더 떴다. 범죄자엔 탈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은 것.

특히 마피아가 LA에 발을 붙이지 못한데는 게이츠의 공이 컸다. 정보를 입수하면 즉시 공항으로 경찰 특수부대를 보냈다. 다짜고짜 마피아를 붙잡아 사막 한가운데로 끌고 가서는 폭행과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다음엔 이곳에 그대로 놓고 가겠다. 이 불볕더위에 살아 걸어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마피아는 LA 진출을 엄두도 못냈다.

게이츠는 재임기간(1978~1992) 중 시장과 늘 불화하고 반목했다. 그래서 일부 언론에선 그를 대럴 '맥아더' 게이츠로 꼬집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군통수권자인 트루먼에 도전했던 맥아더에 빗댄 별명이다.

로드니 킹 구타사건이 계기가 돼 흑인 소요가 일어났지만 정작 게이츠는 지휘부인 파커센터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시장의 경찰 개혁을 무력화시키겠다며 기금모금 파티에 참석하는 등 꼴불견을 연출한 그였다.

흑인들의 시위가 폭동으로 변한 데는 게이츠의 '백인우선' 편견이 적지않게 작용했다. 베벌리힐스 주변에 방어선을 펴 애꿎은 한인타운이 화염에 휩싸인 것. 이 바람에 한인 청년을 포함해 53명이 사망하고 재산피해액만도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참화가 일어나게 됐다.

결국 얼마 안가 사임하고 말았으나 게이츠는 자신의 잘못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서는 흑인과 라틴계를 겨냥한 듯 "마약 복용자는 총으로 다스려야 한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니 이들은 모두 반역자들이다"는 망말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게이츠가 엊그제 1년 여의 암투병 끝에 숨졌다. LA폭동(4.29) 18주년을 불과 보름 앞두고서다.

게이츠는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읽지못해 몰락을 자초했다. '더불어 함께'가 아닌 백인의 좋았던 '과거'에만 집착한 나머지 화를 부른 것이다. '신 블루 라인'이 한번쯤 곱씹어봐야할 교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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