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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4·29 폭동 20주년의 다짐

길옥빈/변호사·전 백악관 아태자문위원

이제 곧 4.29폭동 20주년이 된다. 20년전 나는 30세 초반의 젊은 변호사로서 어린 두 딸과 막내 아들을 임신 중이던 아내와 함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때만 해도 학군 좋은 백인 지역의 큰 저택에 살며 유럽산 차를 소유하는 것이 한인 이민자들의 아메리칸 드림인 줄 알았다.

또 법을 준수하고 세금을 잘 납부하면 평등한 권리와 보호를 정부로부터 받으면서 미국 시민이자 자랑스러운 1.5세로서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4.29 폭동은 이런 순진한 나의 생각을 산산조각냈다.

1992년 4월 29일 수요일 아침. 윌셔불러바드에 위치한 사무실에 평상시처럼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했다. 로드니 킹을 구타한 LAPD 백인 경관들의 무죄판결이 발표되면서 흑인 사회의 동요와 시위 소식을 들었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출근길 방송에서 흑인 폭도들이 한인타운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형들이 운영하고 있는 업소가 걱정됐다.

그날 목요일(4월 30일) 오후부터 토요일(5월 2일) 오전까지 2박 3일 동안 나는 두 형과 함께 업소를 지키며 한인들이 피와 땀으로 일궜던 업소와 소유 건물들에 약탈과 방화로 불기둥이 솟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폭도들에 대한 두려움과 LA시와 미국 정부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으로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나를 더 허탈하고 분노하게 만든 것은 LAPD를 포함한 시 정부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한인타운과 한인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주 7일 일하며 세금을 내면서 한인타운을 발전시켜왔고 또 선거철에는 후원금을 열심히 낸 우리 한인 사회에 돌아온 것은 외면과 폭동 피해에 대한 책임 전가 뿐이었다.

일부 흑인 정치인들은 한인 사업가들이 흑인 커뮤니티에서 돈만 벌어가며 흑인들을 무시하고 차별했기 때문에 폭동을 당했다는 발언을 스스럼없이 했다.

20년이 지난 오늘 나는 흰 머리가 보이는 중년으로 변했다.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물질적인 성공과 사치스러운 삶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평등과 권리를 위해 싸우고 지키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아가 이방인이 아닌 주인의식을 갖고 이 나라를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한인사회가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우리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한인타운은 제 2의 4.29폭동을 다시 안 겪는다는 보장이 없다.

올해는 미국 대통령 선거부터 시작해서 각 로컬 선거가 있다. 이제라도 1세들과 1.5~2세들이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 정치인 후원금 모금 활동과 유권자 등록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한인 커뮤니티를 위한 정책을 지지하는 후보들을 당선시키고 동시에 반대해 왔던 정치인들을 낙선시키는 운동을 펼쳐 우리의 목소리를 주류사회에 전달해야 한다.

또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살고 있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더 환원하고 봉사해 타민족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그들의 지지를 확보해 한인 권익신장에 기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각 교회 목사님과 지도자들이 지역사회 발전과 타민족과의 유대관계 개선에 더 많이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교인들에게 투표를 독려했으면 한다. 미국의 인권운동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와 교계에서부터 시작됐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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