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59.0°

2020.04.05(Sun)

런던 올림픽 D-3…48년 다이빙 금메달 새미 리

[LA중앙일보] 발행 2012/07/24 미주판 1면 기사입력 2012/07/23 20:38

'인종차별 부순' 그곳에 다시 갑니다
피부색 때문에 수영장 못가 모래판에서…
다이빙 연습하다 허리다쳐 아직도 통증

제 30회 런던올림픽 개막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세계인의 시선은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203개국에서 출전한 선수들이 뜨거운 경쟁을 벌일 런던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런던을 향해 그 누구보다 더 뜨거운 눈길을 주는 이가 있다. 64년 전 그곳에서 열렸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다음달 역사의 현장을 다시 찾게 될 새미 리 박사다.

"나를 향해 쏟아졌던 인종차별을 한 번에 다 깨부순 느낌이었지. 런던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희망의 도시야."

1948년 8월 7일. 영국 런던의 임페리얼 수영장.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올림픽 다이빙 시상대 한 가운데엔 키 작은 동양인(5피트 2인치)이 서 있었다. 새미 리(91) 박사가 아시안 아메리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우뚝 선 순간이었다. 당시 그는 플랫폼에서 금메달 스프링보드에서 동메달을 각각 획득했다.

리 박사가 64년 만에 다시 런던에 간다. 올림픽 특별 게스트로 초대 받았다.

올림픽 개막을 나흘 앞둔 23일 헌팅턴비치 자택에서 만난 리 박사는 허리 통증으로 거동이 불편했다. "고등학교 때 다이빙 연습을 하고 싶어도 내 피부색 때문에 주중에 수요일만 수영장을 이용할수 있었어. 그래서 주로 모래판에서 다이빙 연습을 미친듯이 했어. 그러다 허리를 다쳤지."

리 박사는 자신이 금메달을 따낼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꼭 대회를 치러야만 아나? 다이빙에선 내가 세계 최고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지."

다음달 4일 런던으로 출국하는 리 박사는 "1948년 대회 당시 영국 국민의 따뜻한 환대를 잊을 수 없다. 2주일 동안 다이빙은 물론 될 수 있는 한 많은 경기를 관람하고 싶다"며 런던행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리 박사는 1952년 헬싱키(핀란드) 올림픽에서도 플랫폼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다이빙 사상 최초의 2연속 금메달 획득이란 쾌거를 일궈냈다. 당시 그의 생일(8월 1일)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그는 이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하나도 들려줬다. "보수적인 기자들이 많았을 때였는데 이들이 '지금 무슨 생각하냐'고 물어보길래 '내 자신에게 생일 축하한다 이 녀석아. 네가 또 해낸거야(Happy birthday you son of a bxxx)!라고 말했다'고 답했더니 기자들이 '그건 인용할 수 없다'며 투덜대더라." 이 대목에서 리 박사는 껄껄 웃었다.

금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수상했음에도 인종차별의 벽은 여전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는데 내 집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동양인에게는 집을 팔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집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LA 타임스 스포츠 칼럼니스트였던 빌 헨리의 도움이 컸다.

"그 친구가 내가 올림픽 금메달 2개를 수상하고 군생활까지 한 애국자임에도 집 한채도 구입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당시 사람들이 아시안에게는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집을 팔지 않았다. 부동산 에이전트들도 아시안이라면 고개를 저었다. 이후 전국 TV 방송국들이 이 이슈를 크게 다뤘고 결국 가든 그로브에 있는 유태인 이민자로부터 집을 샀다. 그때 첫 아이도 낳았는데 여기저기서 나의 뉴스를 듣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덕분에 1년 동안 기저귀도 공짜로 받았고 집 앞 잔디관리비도 누가 대신 내줬다."

리 박사는 1940년대에 USC에서 우여곡절 끝에 의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사실 내 성적으로는 의대 근처에도 갈 수 없었어. 하지만 아버지가 담당교수에게 빌고 빌었지. '제발 우리 아들 좀 입학시켜 달라고 말야. 그리고 일주일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교수도 할 수 없이 '넌 어차피 졸업 못한다'면서 입학을 허가해 줬어."

첫 두 학기는 전과목 F학점. 세 번째 학기는 평균 D마이너스 학점을 받아 퇴학 일보 직전에 몰렸다. 하지만 이후 이를 악물고 매일 밤 늦게까지 공부하면서 기어코 졸업장을 받았고 1955년부터 79년까지 이비인후과 의사로 활동했다.

"아흔이 넘는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리 박사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다"며 활짝 웃었다. 그럴 만 하다는 공감이 밀려왔다.

원용석 기자 won@koreadaily.com

관련기사 수영 영웅 새미 리 박사 96세 타계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