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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대한항공 부사장의 '황제 갑질'

이종호/논설위원

항공기 좌석은 철저히 자본의 논리가 지배한다. 1등석, 비즈니스석, 이코노미석의 값 차이는 몇 배나 된다. 비싼 돈을 낸 승객이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은 그러니 당연하다.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돈이나 권력으로 산 특별대우가 타인의 권리와 생각까지 맘대로 좌우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엊그제 인터넷은 온통 뉴욕발 인천행 대한항공 1등석에 탑승했던 조현아 부사장에 대한 성토의 장이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맏딸이다. 그가 '마카다미아 너트'를 뜯지 않고 봉지째 줬다는 이유로 사무장을 호통치고,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향하던 비행기를 되돌려 그를 내리게 한 것에 대한 분노였다.

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비행기 타면 주는 '땅콩'은 당연히 봉지째 받아 본인이 직접 뜯어서 먹는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코노미석과 달리 1등석 승객에겐 먼저 '드시겠습니까'라며 의향을 물어보고 난 뒤 봉지를 뜯어 종지에 담아 음료와 함께 내놓게 되어 있단다. 하지만 조 부사장은 해당 승무원이 그런 규정을 안 지키고 그냥 들이밀자 이를 호되게 질책하면서 사태가 커졌다는 것이다. 쫓겨난 사무장은 12시간 뒤 다른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갔고 승객들도 이 때문에 출발이 20여분 지연되는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인터넷 댓글의 대부분은 조 부사장의 '황제 갑질'에 대한 분노였다. 미국서 공부하고 25살에 입사해 6년여 만인 31살에 임원이 된 '세습 벼락출세'에 대한 시샘도 곁들여졌다. 지난해 하와이 원정출산 물의 등 그녀의 평소 언행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비난이 빗발치자 대한항공은 서둘러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게 더 불을 질렀다.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고 있는 담당 임원으로서 조 부사장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었다며 사과보다 변명으로 일관했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항공사 측 해명대로 단순 갑질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회사가 공들여 서비스 매뉴얼을 만들고 직원 교육에 신경 써왔는데 일선 현장에선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고 있고, 심지어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면 담당 임원으로서 화가 났을 법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 정황상 이해와 배려 부족이라는 비난은 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퍼스트클래스 승객들에 대한 서비스는 그렇게 신경 쓰면서 자신의 행동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될 다른 승객들은 왜 조금도 생각하지 못햇을까. 더구나 비행기 문이 닫히면 그때부터는 누가 타더라도 지휘.감독은 기장이 하는 것인데 그렇게 규정 따지는 사람이 멋대로 비행기를 돌려 세우고 사무장도 없이 항공기를 운항하게 한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국 이런 행동은 '내가 누군데 감히'라는 체질화된 오만함에서 나왔다고밖에 볼 수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회식 후 대리운전 기사에게 "내가 누군 줄 알아"라며 호통 쳤던 국회의원, 입에 딱 맞게 라면을 끓여오지 않는다고 안하무인으로 날뛰던 '라면상무'와 다를 바가 없다. 안타깝게도 주변엔 이런 오만의 리더십이 너무 많다. 각종 단체는 물론 군대, 학교, 회사, 심지어 종교계까지 왜곡된 사명감과 과도한 권위의식으로 천방지축 설쳐대는 '완장'들, 그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보통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가.

고대 그리스 델피신전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진 이 경구는 원래 분수 모르고 날뛰는 인간의 오만을 경고한 말이라고 한다. 여전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 아닌가. 그렇다면 이 땅의 모든 가진 자, 높은 자들이여, 세상 모든 문제의 진원지는 그대들이거늘. 제발 좀 이런 말 한마디라도 읽어보시라. 그리고 행동하시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읽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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