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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 기자의 취재 그 후] 기독교 살려면 신학교 수준 높여야

종교면 기획기사로 '신학교ㆍ신학생의 현실과 미래'를 두 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오늘날 신학교는 위기다. 기독교의 영향력 감소는 신학의 매력마저 잃게 했다. 젊은 인재들은 신학교를 외면한다. 지원자가 없으니 우수한 학생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도 좁아졌다.

학생 수가 줄어드니 학교는 재정적으로 운영이 어렵다. 오죽하면 미국 신학교가 한국어 프로그램을 개설해서 학생 모집에 나서겠는가. 신학교는 결국 학생을 끌기 위해 문턱을 낮췄고, 졸업학점까지 줄이며 나가는 문을 넓혔다.

그 결과 너도나도 목회자가 됐다. 좀 더 쉬운 길을 찾는 이들을 위해 비인가 신학교까지 우후죽순 생겨났다. 목사 안수는 남발됐고, 이는 기독교의 수준을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기사를 작성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신학교 관계자들은 딱히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만큼 문제는 복합적이었다.

그럴수록 신학교는 기준을 높여야 한다. 시대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고전하는 원인 중에는 신학교가 양질의 사역자를 제대로 배출하지 못한 것도 있다.

타 학문은 이성을 바탕으로 지식 체계 안에서 지성인을 양성한다. 반면 신학은 특이하다. 신념을 바탕으로 '신론'에 대한 신학적 체계를 배운다. 지성은 기본이다. 영성과 인성까지 겸비하지 않으면 신론의 습득은 어렵다.

신학생을 보면 기독교의 미래가 엿보인다. 그들을 제대로 양성하지 못하면 교회의 앞날은 어둡다. 지금은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 시대다. 이 가운데 신학이 담아내는 신론의 가치적 우위를 드러내려면 여러 방면에서 준비돼야 한다.

목회자가 현장(교회)에서 마주하는 건 교인이다. 반면 교인에게 실제 현장은 사회다. 두 영역엔 괴리가 있다. 목회자가 신학을 통해 교인이 속한 다양한 콘텍스트(상황)를 이해하며 신론의 본질을 설파하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신학교 때부터 철저히 고민하게 하고 준비시켜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신학교가 부실하면 신학 없는 설교자, 교회 전략가만 무성해진다. 신학교가 좁아지면 식견이 얕고 학문에만 갇힌 외통수가 양산된다. 이처럼 균형을 유지하며 수준을 높여도 될까말까한 시대 속에서 과연 기준을 낮춰서야 되겠는가.

기독교의 교세는 줄고 있다. 이제는 과거처럼 다수의 목회자를 공급해야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신학교는 덩치를 줄여 운영에는 여유를 두고, 반면 수준을 높여 소수 정예를 추구해야 한다. 소수에 대한 지원이라면 교단이나 지역교회도 '십시일반' 돕는데 있어 부담이 덜할 수 있다.

'명문'에는 반드시 인재가 몰리게 돼있다. 현재 신학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전반적으로 신학교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기독교가 살려면 신학교부터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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