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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올바른' 이라는 단어의 수난

이종호/논설위원

김영삼(YS)은 강단 있는 정치가였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 그의 말처럼 소신과 뚝심은 그의 전매 상표였다. 노태우-김종필과의 3당 합당을 통해 끝내 대통령이 된 것은 그런 집념의 산물이었다.

YS 문민정부는 IMF 구제금융으로 빛이 바래긴 했지만 의외로 많은 일을 했다. 모두가 힘들 거라 했던 금융실명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청산 등을 밀어붙여 성사시킨 것은 YS의 뚝심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역사 바로 세우기'도 마찬가지다. 부끄러운 과거, 수치스러운 역사는 지워 없애버려야 한다는 게 YS의 역사관이었다. 5.18과 비자금을 수사하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격상시켰다. 일제 총독부 청사이자 중앙청 건물이었던 국립중앙박물관도 철거했다. 모두가 그런 YS식 역사관의 반영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환호했다. 일제잔재 청산, 민족정기 복원이라는 대의명분에 '감히' 반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쉬운 대목도 있다. 박물관 철거가 그렇다. 이 건물은 1926년 완공됐다. 독일 유명 건축가가 기초를 설계한, 당시로는 동양 최대 석조건물이었다. 광복 뒤엔 미 군정청 집무실로, 1948년 정부 수립 후엔 제헌국회 의사당으로도 쓰였다. 이후 중앙정부 청사로, 1986년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였다. 일제 총독부 청사보다 대한민국 정부가 사용했던 기간이 훨씬 더 길었다.



영광의 시간도 우리 역사요, 오욕의 장면도 우리 역사다. 지운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고 덮는다고 덮어지지 않는다. 친일.독재 등 수치스러운 역사에서도 교훈을 캐내는 것이 지혜로운 민족이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라 그런 과거를 부끄러워하고 감추려하는 태도다.

치욕의 자취라도 역사적 현장이라면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이 많은 선진국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YS 때는 그러지 못했다. 당시 집권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었던 김종필 전 총리도 제헌의회 의사당이었던 중앙홀과 9.28 서울 수복의 감격이 담긴 박물관 건물 앞 국기 게양대만이라도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해 남겨놓자고 박물관 이전을 건의했지만 YS는 "씰~데 없는 소리"라며 묵살했다고 한다. 결국 1995년 건물은 깡그리 폭파되고 말았다. 요즘 같으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충분히 지정될 수도 있을 건물이었다. 이전 복원이라도 해 두었더라면 지금 일본과의 역사 전쟁에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을까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모두가 박수쳤던 일이었다. 하지만 20년이 못가 이렇게 평가가 엇갈린다. 하물며 지금 대다수 역사학자, 역사교사, 지식인들이 피 토하며 말리는 일임에랴. 역사는 긴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 해석과 평가는 정치인이 아닌 역사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동시대 역사라면 더욱 그렇다. 정부 주도의, 그리고 정치적 이벤트 성격의 '역사 바로세우기'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또 다시 정치가 역사를 평가하려 든다.

왜 긁어 부스럼인가. 내년 총선 표가 그리 다급한가. 아무리 봐도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자충수다. 21세기 탈냉전 시대에 웬 시대착오적 발상이냐며 해외 양심들까지 조롱한다. 어렵게 쌓아 올린 '민주 한국'의 이미지가 말이 아니게 됐다.

정부 말대로 종북-좌편향이 문제라면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고 보완하면 될 것이다. 자기 방식의 교리에 맞지 않는다고 고대유적을 파괴하고 있는 이슬람국가(IS)를 우린 무지몽매하다고 비난한다. 내 기준에 어긋난다고 기존 역사 교과서를 전부 없애버리려 한다면 IS와 무엇이 다른가. 거기다 새 국정교과서 이름을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고 하겠다니 이 또한 코미디다. '올바르다'는 말이 언제부터 '정부 독점'과 동의어가 되었는가.

목적이 불순하면 어떤 좋은 말로 포장해도 들통이 나게 되어 있다. 역사는 누구 한 두 사람 입맛대로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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