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창] 다산이 보낸 200년 전 새해 편지
이종호/논설위원
다산을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오게 만든 계기는 아무래도 그의 편지 모음집 출간이 아닌가 싶다. 다산 연구에 평생을 바친 박석무 선생이 1979년 처음 펴낸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이 그것이다. 이 책엔 18년 유배 기간 동안 다산이 두 아들과 둘째 형님,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와 당부의 말 등이 담겨있다. 자상한 아버지로서, 따뜻한 동생으로서, 엄격한 스승으로서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60여 편의 글이다.
2016년 벽두, 그의 편지를 다시 들춰보았다. 이미 여러 번 읽었음에도 다산의 목소리는 여전히 간곡했고 그 일깨움은 다시 새로웠다. 새해 아침, 다산에게 배운 몇 가지 가르침은 이렇다.
첫째, 계획하고 실천하는 삶이다. 마침 다산이 새해 첫날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글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새해가 밝았구나. 군자는 새해를 맞으면서 반드시 그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새롭게 해야 한다. 나는 소시적 새해를 맞을 때마다 꼭 일 년 동안 공부할 과정을 미리 계획해 보았다. 예를 들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뽑아 적어야겠다는 식으로 계획을 세워놓고 꼭 그렇게 실천했다."
언제부턴가 해가 바뀌어도 무심해지고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에도 무감해졌다. 이 편지는 그런 나를 향해 보낸 편지 같았다. 다산의 꾸짖음이 들리는 것만 같다. "그래서야 되겠느냐, 정말 그래서야 되겠느냐."
둘째, 상황 탓하지 말고 남 핑계대지 말기다. 다산은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됐다. 1801년, 순조 1년 때의 일이다. '대역죄'를 짓고 귀양 온 선비에 게 누구 하나 말 걸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좌절하거나 실의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부할 겨를을 얻었다"며 스스로 위로하고 학문에 매진했다. 18년 긴 유배 생활 중에도 오직 글과 붓을 벗 삼아 그 많은 저작들을 쏟아낼 수 있었다.
조금만 처지가 나빠져도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우리다. 아무리 상황이 열악하다 한들 유배지의 다산보다 더할까. 이 좋은 형편, 이 좋은 환경에 살면서도 어떻게 하면 될까 궁리하기보다 그저 안 된다는 핑곗거리만 찾고 있는 마음 자세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셋째, 생각을 바르게 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이렇게 썼다. "폐족의 자제로서 학문마저 게을리한다면 장차 무엇이 되겠느냐. 폐족이라 벼슬은 못하지만 성인(聖人)이야 되지 못하겠느냐. 문장가가 되지 못하겠느냐." 이 비장하고 처절한 당부 속에 서린 아버지의 피눈물을 두 아들은 과연 얼마나 알았을까.
이에 더해 왜 글을 읽어야 하는 지를 일깨우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어떤 자세로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모름지기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라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새해다. 또 한 해 그저 무심히 시작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럴 때 200여년 세월을 뛰어 넘어 큰 선비의 가르침으로 한 해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복이자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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