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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조기 퇴직자와 공자의 '인생삼락'

이종호/논설위원

조선시대 형벌은 크게 5가지가 있었다. 사형, 유형, 도형(노동형), 장형(큰 매로 볼기치기), 태형(작은 매로 볼기치기)이 그것이다. 그중 양반 선비들이 가장 많이 받았던 형벌은 유형, 즉 산간 오지나 외딴섬으로의 귀양살이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존재의 이유도 발견한다. 유배는 이런 모든 것들로부터의 차단을 의미했다. 그런 점에서 유배형의 가장 큰 고통은 고립과 단절감과 함께 다시는 세상 속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실의와 좌절감이었다.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을 남긴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1536~1593)은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최고의 벼슬을 하다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유배지로 쫓겨온 비통한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올 적에 빗은 머리 얼키언지 삼 년일세/ 연지분도 있네마는 눌 위하여 곱게 할꼬/ 마음에 맺힌 시름 첩첩이 쌓여 있어/ 짓나니 한숨이요 지나니 눈물이라.'

조기 퇴직, 조기 은퇴가 다반사가 된 요즘도 이와 비슷한 심경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회사를 떠나야 했던 한국의 친구도 그런 경우다. 지난 12월 총 2000명에 달하는 삼성그룹 임원 중 20%가 회사를 떠났는데 친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해 30년 가까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직장이었다. 항상 남들보다 1시간 더 일찍 출근해 일했고 집보다 회사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40대 말에 직장인의 꽃이라는 임원까지 됐다. 하지만 '영예의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이제 50대 초반. 적어도 몇 년은 더 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럴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퇴직 통보를 받고 친구는 며칠을 울었다고 했다. 졸지에 '팽'당한 느낌이 한없이 서운하고 섭섭해서였다.



이런 이야기는 신문에나 나오는 것이려니 했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가 그런 일을 겪는 것을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지난 주 썼던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 이야기는 실은 그를 생각하며 쓴 칼럼이었다. 동시에 18년을 유배지에서 보내면서도 책과 글을 벗 삼아 오히려 더 빛나는 삶을 살아 낸 다산을 "나도 한때는…"이란 과거에 사로잡혀 조락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모든 비슷한 연배에게 자기극복의 롤모델로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공자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 짓고 싶다. 천하의 공자도 50이 넘어서야 처음 벼슬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그 자리도 몇 년을 못 채우고 해임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공자는 자신을 받아줄 군주를 찾아 천하를 주유했다. 말이 좋아 주유천하(周遊天下)였지 그야말로 조롱과 모욕의 시간들로 점철된 초라한 나그네 행각이었다. 그러면서도 끝내 '자리'를 얻지 못하고 68세가 되어 고향 노나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자는 더 큰 것을 찾았다. 인생의 진정한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를 터득한 것이다. 그것은 부귀도, 공명도, 명예도 아니었다. 논어 첫 장 첫 구절에 나오는 공자의 '인생삼락'은 우리가 이미 잘 아는 다음 세 가지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하거나 성내지 않으니 그 또한 군자가 아닌가.'

제 아무리 화려한 꽃도 열흘을 못 넘기고, 달도 차면 기울게 되어 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해서 크게 슬퍼할 것도, 너무 괴로워할 것도 아니다. 비록 유배지에서조차 주옥같은 저작들을 쏟아낸 송강처럼, 다산처럼 살지 못하는 '그저그런 인생'이라 해도 마음 먹기에 따라 공자의 인생삼락 정도야 얼마든지 누리며 살 수 있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옛벗이라도 만나 못하는 술이라도 한 잔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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