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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참을 수 없는 '단'의 가벼움

단(段)이 문제가 됐다. 태권도 단급 때문에 전세계 태권도인들의 성지라는 국기원이 오물까지 뒤집어썼다. 저단자인 오현득 신임 국기원장의 자격 논란과 이사진 구성을 놓고 지난 15일 폭언과 폭력, 오물 투척 사태까지 벌어졌다. 통상 국기원장은 9단이어야 하는데 오 신임원장은 5단의 '저단자'이고 태권도의 근간을 해치는 행정을 펼친다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태권도연합(ATU·회장 조택성)도 오 신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해 투쟁에 나섰다. 미 전역 240여명의 사범들이 서명에 동참했으니 몇몇 소수의 주장이 아니다.

한인 사범들이 이렇게까지 반발하는 이유는 '단'에 대한 가치 폄하 때문이다. 한인 사범들에게 승단의 의미는 한국의 사범들보다 훨씬 더 무겁다. 일단 승급 심사조차 받기가 어렵다. 저단자의 심사추천권이 있는 고단자 사범수가 부족해서다. Lee's 태권도 교육센터의 이정규 사범은 4단에서 5단 승단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최근 무예전문매체 기고문에서 미국 현지에서의 승단 심사가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 적었다.

5단 이상 고단자 사범 승단 심사는 평소 존경하는 원로 관장을 심사위원으로 초빙하고 제자들과 지역주민까지 모두 초청하는 잔치라고 했다. 사범들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치 10급 초급 수련생처럼 구슬땀 흘려가며 일일이 품새와 겨루기를 선보이고 수백장씩 송판을 부수며 가진 실력을 다 보인단다. 그 이유는 심사관인 원로 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했다.



"진짜 심사관은 객석을 가든 메운 내 제자들이다. 평소 자기 사범의 가르침과 실천이 일치하는지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승단 심사는 퉁퉁 부은 내 손과 '땀에 절은' 내 도복을 목격한 제자들에게서 존경을 받기 위한 자리다."

이 사범의 설명은 뒤집어 말하면 국기원의 공인 단증이 미국에서 사실 큰 의미가 없음을 뜻한다. 타인종 수련생들에게 단증은 함께 땀 흘려 가르친 사범이 주는 것이라 중요한 것이지, 국기원이라는 생소한 발급 단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인 사범들이 투쟁에 나선 근저에는 '국기원의 푸대접'도 작용했다. 미국 한인 태권도 도장의 저력은 상상 이상이다. 한국은 저출산으로 태권도 수련생수가 감소하는 반면에 미국내 태권도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13년 현재 미국내 도장수는 2만3000여개로 한국내 도장수 9600여개의 2.5배에 달한다. 대도시 뿐만 아니라 작은 마을 곳곳까지 모세혈관처럼 퍼져 '한국의 혼'을 가르치는 현장이다.

미 전역 도장에서 국기원에 보내는 승단심사비도 전체 수익의 30~40%에 달한다. 한 사범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한인 사범들이 국기원으로부터 받는 건 매년 달랑 달력 한부가 전부"라고 했다.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한인 사범들이 국기원에 승단 신청서를 보내는 이유는 공인 단증의 무거움을 알기 때문이다.

처음 10급이 되었을 때, 유단자로 첫 승급됐을 때, 사범으로 처음 도장을 시작했을 때 모두 국기원에서 받은 '승인'의 감격을 그들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최근 국기원의 오물 사태는 타향에서 한인 사범으로서 평생 쌓아온 자부심을 한순간에 무너트리는 행위나 다름없다고들 한다.

한인 사범들은 국기원의 구태가 답습될수록 태권도의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도 태권도는 심신을 수양하는 '행동 철학'이 아닌 장사 수단이 되고 있다고들 했다. 다이어트의 한 방법이나 종합격투기 인기에 영합한 '국적불명의 발길질'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한인 사범들의 서명운동 투쟁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나왔다. 국기원을 상대로 싸움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제발 그 격에 맞게 중심을 잡으라는 호소에 가깝다. 오현득 신임원장의 퇴임을 요구한 이유도 개인에 대한 반대라기 보다는 새출발을 하라는 주문이다. 상하를 막론하고 국기원 관계자들 모두가 처음 흰띠를 허리에 둘렀던 그때 초심으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다.

모든 사전에서 태권도를 정의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이 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유하며, 예절바른 태도로 자신의 덕을 닦는 행동 철학이다.'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국기다. 단의 가벼움이 문제가 아니다.


정구현/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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