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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큰 교회들의 착각

이종호/OC본부장

#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것은 1392년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것은 1910년이다. 그러니까 조선은 정확히 518년간 이어졌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이렇게 오래 존속된 왕조는 별로 없었다. 위세등등했던 중국 왕조들도 길어야 200~300년이었다. 조선 이전 고려도 500년 왕조였다.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도 근 700년, 신라는 1000년을 이어갔다. 우리 선조들의 나라는 이렇게 장수 국가였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왕들의 뛰어난 리더십, 지배층의 솔선수범, 합리적인 제도?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어쩌다 그런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역사 대부분의 기간은 혼돈과 혼란의 시간이었다. 잦은 외침은 차치하고서도 지도층의 권력다툼은 그칠 새가 없었고 권력자의 부패 타락도 문제 아닌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긴 세월 존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그래도 허리가 튼튼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 맞서 책과 붓 대신 칼과 창을 들었던 의병장들처럼 최고 권력층이 죽을 쑤든 말든 일편단심 나라를 섬기고 백성을 다독거린 중간 지식인, 선비, 관료들이 바로 그 허리였다.

# LA 한인타운에 세계선교교회가 있다. 소박한 보통 사람 200명 쯤 모이는 소담한 교회다. 이 교회가 4년째 해오는 일이 있다. 여름 방학 두 달 동안 최소한의 비용으로 150여명 아이들을 맡아 돌봐주는 일이다. 최운형 담임 목사는 말한다. "방학이면 경제적 부담에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난감해 하는 젊은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들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자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런 게 교회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이런 일은 교인들의 마음이 모이지 않으면 절대 못하는 일이다. 시간과 물질, 섬김의 정성까지 보태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는 우리 아이도 교인은 아니지만 교사로 8주간 봉사를 했다. 프로그램을 끝내면서 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이 교회, 부자 교회는 아니지만 참 좋은 교회인 것 같아. 거기 비하면 우리 교회는 너무 풍족해.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LA에서 제일 크고 유명하다는 교회를 10년 가까이 다닌 아들이다. 하지만 한 번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뭔가 어렴풋이 보이는 모양이다. 교회라고 다 같은 교회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간 지 150년이 다 되어간다. 초창기 기독교는 개화와 문명의 상징이었다. 나라의 앞길을 밝히는데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약한 자 힘 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추한 자 정케 함이 주님의 뜻이라.' 이런 찬송가 가사가 한국 기독교의 시대정신이었고 한국 교회의 힘이었다. 하지만 이젠 다 옛말이 되었다. 바르고 정의롭던 기풍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검소, 질박의 전통은 박제처럼 딱딱해졌고 관용, 박애의 미덕도 전설처럼 아련해졌다. 교회의 대형화, 세속화, 권력화가 가져온 필연적 결과다.

그런데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다. 수천 명, 수만 명 모이는 대형교회들이 한국 교회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이 쏟아내는 온갖 부정적 모습들이 한국 교회의 모든 것이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쭉정이다. 알곡은 따로 있다. 그 잘난 교회, 그 유명한 목사들이 아무리 찧고 까불어도 묵묵히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건강한 허리같은 교회들이 아직은 더 많다. 올 여름 아이가 봉사했던 교회도 수많은 허리 교회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현대 기독교는 수명을 다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튼튼한 허리가 떠받치고 있는 한 그렇게 쉽게 기울지는 않을 것이다. 가진 자, 잘난 자, 권력자들이 그렇게 분탕질을 했어도 500년 이상 꿋꿋이 이어졌던 조선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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