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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국뽕'이 때론 우리를 주저앉힌다

김치는 그 종류도 여러 가지지만 양념에 따라서도 제각각 맛이다. 고춧가루의 양, 젓갈 유무와 그 종류, 숙성 기간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을 낸다. 식당이나 남의 집에 갔을 때 '그집 김치' 맛에 반하거나, 쿰쿰한 향에 아예 손을 안 대는 경우도 있다. '토종' 우리도 그러한데, 외국인들이야 오죽하랴. 좋고 싫고, 때론 혐오가 분명히 있을 텐데 우리네 한국인은 죽어라 강요한다. "김치, 좋아해요?" 예의상 "아이 러브 김치!"라는 빈 대답이라도 들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메인 요리가 아님에도 '김치 질문'은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끈질기다.

비빔밥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잭슨이 좋아한다고 할 때부터 대한민국 대표 음식이 됐다. 사실 맛을 제일 따지는 어린 시절, 비빔밥은 엄마가 안 보면 몇 개는 들어내고 먹는 음식이다. 시금치 들어내고, 당근 들어내고, 호박 들어내고…. 건강이 맛으로 전환된 요즘이야 맛있는 음식일지 모르지만 비빔밥을 '맛있다'에 방점을 찍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줄기차게 묻는다. "비빔밥 좋아해요? 맛있어요?" 질문에 기세에 눌려서인지 "네, 맛있어요"가 바로 나온다.

끔찍한 일도 많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중장년의 정부관료들이 하얗고 높은 요리사 모자를 쓴 채, 공사판에 쓰일 삽들을 들고 대형 비빔밥을 버무렸다. 한식 세계화 일환. 그걸 보고 입맛 당길 사람도 있었을까. '몬도가네'를 떠올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K 접두사'가 유행이다. K팝으로 시작돼 K푸드, K뷰티 등 K·K·K…. 심지어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자 K문학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K는 Korea다. 국가 자부심이자 구호. K 접두사를 보면 마치 한국이 그 분야에서 세계를 휘어잡고 있고 그런 흐름이 도도하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정부 기관은 앞다퉈 남용하고, 온갖 K신조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리우올림픽 기간, K스포츠 중 가장 관심이 쏠린 축구는 천국(멕시코전)과 지옥(온두라스전)을 오갔다. 1-0으로 이기고 졌다. 천국에서는 단 한 번의 기회를 골로 연결시켰다. 지옥에서는 수 차례 결정적 기회에도 골을 넣지 못했다. 웃기는 것은 'K해설'이었다. 멕시코전은 졸전 그 자체였음에도 해설은 골을 넣자마자 180도 바뀌었다. 선수 교체를 잘했고(교체선수가 넣은 것도 아니다), 수비가 탄탄했고, 조직력이 살아났다고 했다. 온두라스전 해설은 멕시코전과 똑같은 상황에 주인공만 바뀌었음에도 상대방의 지연(침대 축구) 때문에 진 것처럼 됐다.

국가와 '히로뽕'을 섞은 신조어 '국뽕'. 무조건적이고 맥락 없이 '한국'을 찬양하는 애국심의 변종.

1971년 한국의 모든 극장에서는 영화를 보기 전 매회 애국가를 틀었다. 영화 보기 전 1분30초씩 '일동 기립'해야 하는 시대의 시작이었다. 에로 영화가 붐을 이룰 때도 엄숙한 애국가는 처음을 장식했다. 이어지는 '육체의 향연'. 난감한 어색함은 1989년까지 이어졌다.

시인 황지우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국뽕'을 돌려깐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자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국뽕은 조미료다. 적당히 넣으면 맛이 올라온다. 너무 넣거나 반드시 뿌리면 느끼할 수밖에 없다.

'일동 기립'의 애국심은 우리를 주저앉힌다.


김석하 사회부장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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