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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한인타운 노숙자 르포] "… …"

크리스마스를 10여 일 앞둔 지난 16일. LA일대에 세차게 비가 쏟아졌다. 반갑게 내리는 겨울비. 아름다운 비였지만 마음 한 편이 편치 않았다. 지난 밤 차가운 비를 고스란히 감당했어야 할 노숙자들이 거리에 너무도 많아서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새벽 취재 현장에, 한 노숙자가 건물의 좁다란 처마를 지붕 삼아 겨우 비를 피하고 있었다. 밤새 그곳에서 추위에 떨었는지 그의 오돌거리는 몸의 떨림이 전해지는 듯했다. 축축하게 젖은 운동화 속에 양말도 신지 않은 그의 검은 맨발이 자꾸 눈에 밟혔다.

마침 해피빌리지에서 제작한 '사랑의 점퍼'를 꺼내 커피와 함께 건넸다. 그는 "감사하다"며 굶주린 배를 채우듯 허겁지겁 점퍼를 입는다. 그의 하루는 그 점퍼로 조금은 따뜻해 졌을까.

#노숙자들이 살아가는 방법



오전 7시. 7가와 윌셔플레이스 삼거리. 텐트 12개가 자리한 LA한인타운 최대 노숙자 촌이다. 밤새 겨울 폭풍이 몰아친 탓에 텐트를 덮은 파란색 비닐천이 추적거렸다. 인기척은 없다. 누군가의 집 앞에서 가만히 훔쳐보는 모습이 '못된 짓'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날이 밝아온 것을 아는지 40대 후반 정도 남성이 텐트 밖으로 나온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비닐천 한 귀퉁이를 지지대에 여몄다. 맞은편 도요타 코롤라 차 한 대. 연식이 20년은 넘어 보이는 차다. 유리창에 희뿌옇게 김이 서렸다. 20대 백인 남성이 조수석에서 나왔다. 남성의 화장실은 차량의 문밖이다. 자연스럽게 소변을 보고선 길을 건너더니 텐트를 고정하던 남성과 인사를 나눈다. 차량 노숙자와 텐트 노숙자는 담배를 나눠 피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서 오는 흰색 미니밴을 반긴다. 텐트촌 앞에서 멈춰선 미니밴에서 50대 한인 중년 남성이 내렸다. 그는 먼저 일어난 이들과 가볍게 인사했다. 서로가 익숙한 듯 먹을 것을 주고받았다. 서로 대화는 없지만 몸짓은 친숙하다.

바나나 3~4개, 빵,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 담긴 음식 꾸러미. 한인 남성은 챙겨 온 음식을 나눈 뒤 빠르게 사라졌다. 음식 꾸러미를 받은 이들은 이웃사촌인 옆집 텐트를 두드리며 안에다 받은 음식을 넣어줬다. 외로운 노숙생활, 길바닥에 내앉아도 '정'은 살아 있다.

#노숙 장소를 정하는 방법

15일 오후 3시 올림픽과 뉴햄프셔 코너에서 두 명의 여성 노숙자를 만났다. 나란히 앉아 노숙생활을 하는 두 여성은 거리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 텐트 하나 없는 그들이 걱정돼 늦은 오후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는 소식을 알려주자 대수롭지 않은 듯 답한다. 우산도 있고 비가 많이 오면 버스정류장으로 피하면 된단다.

한 여성은 자신을 전기공이었다고 소개했다. "해고된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몇 년 전부터 거리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1년여 전에 한인타운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그에게 왜 LA한인타운으로 왔냐고 물었더니 "노숙자가 뭐 별거 있겠냐 걷다가 멈추면 그게 집이 아니겠냐"고 답했다. 우문현답.

#노숙자가 겨울을 견디는 방법

취재를 하다 잠시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 커피 한 잔을 마시자며 동료와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바쁜 아침, 커피를 투고해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잠시 커피 한 잔에 몸을 녹이며 앉아있으려니 분주한 사람들 사이로 창가에 앉아있는 한가해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너무도 고요히 앉아 있다. 자세히 보니 행색이 남다르다. 노숙자들이다. 밤새 추위에 떤 몸을 녹이기 위해 들어 온 듯 보였다. 어떤 노숙자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구입해서인지 조금은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커피 한잔을 사지 못한 노숙자는 못내 뒤 한번 돌아보지 못하고 숨죽여 앉아있다. 추운 냉기가 없는 이곳에서 커피향으로 만족하고 있는듯 했다. 휑한 시선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에 꽂혀있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셔대는 커피는 그들에게 체온을 지키는 생명수였다. 겨울의 낭만은 그들에게 '지옥에서의 한철'이다.




오수연·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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