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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당신의 자리 -유희경

나는 당신의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사람이다.
당신 발밑으로 가라앉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다.
당신이 눈 감으면 사라지는 그런 이름이다.
내리던 비가 사라지고
나는 점점 커다란 소실점
복도가 조금씩 차가워진다.
거기 당신이 서 있다.


당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그것은 모르는 얼굴이다.
가시만 남은 숨소리가 있다.
오직 한 색만 있다.
나는 그 색을 사랑했다.
당신은 내 오른쪽의 사람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도는 사람이다.
내 머리 위에 흔들리는 이가 있다면
바로 당신이다.
당신은 나를 그토록 지우는 사람이다.

<시평>
여기 근원적 부재를 목도하며, 시인은 상실된 존재를 ‘당신’이라고 호명한다. 사실 누군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관계의 소멸을 의미한다. 시인의 시에서 시적 화자와 타자로서의 ‘당신’ 사이에는 늘 일정한 거리가 놓여진다. 모든 사물이 상대성 속에서 지니는 서로의 대척점이다. 상황인식이 거느리는 거리감이다. 그들은 서로를 인식하지만 결코 같은 자리에 위치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평행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가진다.

‘당신’과 ‘나’의 자리는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만나는 순간 어느 한쪽은 소실되어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관계는 언제나 불구적일 수밖에 없다. “당신은 그토록 나를 지우는 사람”이다. 따라서 ‘당신’에게 지워지지 않기 위해 ‘나’는 ‘당신’을 지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사람”이고 ‘당신’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로 반대의 지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란 그토록 파괴적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 관계 속에서 마냥 좌절하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적극적으로 ‘당신’을 사유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지는 시적 화자가 은폐했던 범죄, 그 스스로 ‘당신’을 지워버렸다는 진실을 드러나게 한다.

임창현/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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