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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당신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5/01 08:06

이소영

‘중환자실, 외부인 출입금지!’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 아니더라도 중환자실은 그 단어 자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주눅이 드는 공간이다. 정해진 면회 시간에 제한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 환자도, 가족도, 친구도 일생에서 가장 괴로운 공간, 살면서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 생명의 끈을 잡고 사투를 벌이는 곳. 바로 이곳이 그녀가 살아가는 공간이다.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 펜로즈 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 전지은의 이야기다.

중환자실로 오는 환자들이 더욱 애틋해 보이는 이유는 그녀 역시 아프고 힘든 이방인이기 때문이었다. 이민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84년, 스물다섯 젊은 부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낯선 땅 미국에 정착하기까지 수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인종차별과 언어장벽에 맞서 스스로 단단해지기 위해 남들보다 배로 열심히 공부했다. 자신이 조금 불편해 보면 안다. 자신이 겪었던 불편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선명하게 보인다. 그녀 또한 이방인이기에 영어가 서툴고 미국 병원이 낯선 사람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지독한 외로움에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아픔은 한국인 간호사의 눈으로만 볼 수 있었다.

전지은 간호사는 에세이집 ‘당신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사진)에 이민 1세대로서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 병원에서 만난 환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매 순간 생과 사가 엇갈리는 중환자실에서 20여 년간 케이스 매니저로 일하면서 다양한 사연을 마주했다. 의사, 간호사, 약사, 사회복지사 등과 함께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 일이 그녀의 역할이다. 의료사고로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된 아들을 바라봐야 하는 부모, 자신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남편을 돌보는 아내 등 삶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특히 60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를 잃고 심장 쇼크가 온 할아버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어느 날 병원 주차장에서 한 할아버지가 쓰러졌다. 할아버지의 병명은 심장마비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타코쓰보 증후군’.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사랑이 깨져서 죽을 것만 같은 급격한 스트레스 상황이 왔을 때 생기는 상심증후군으로 일본 의사에 의해 처음 이름이 붙여졌다. 보통 젊은 여자들에게 많이 온다고 하지만 이 경우에는 평생 할머니와 각별하고 애틋한 사이였던 할아버지에게 찾아왔다. 그 애절한 할아버지의 마음에, 그 아름다운 노부부의 사랑에 코끝이 찡해지고 말았다. 인생의 달고 쓴 순간을 함께 했던 배우자를 잃은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할아버지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겠지.

세상사 천태만상을 응집해 놓은 곳이 병원이다.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불치병 환자들과 세상이 싫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사람들. 그리고 제 위치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들. 한 공간에 뒤섞인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전지은 간호사는 늘 따뜻한 시선을 유지했다. 삶의 무게 앞에 무너져 내린 이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누군가의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고 있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직업이 늘 축복인 것만은 아니다. 매일 웃으며 인사를 나누던 환자가 싸늘한 주검으로 중환자실을 떠날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력감에 괴로웠다. 그런데도 그녀가 병원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환자를 돌보면서 느낀 보람이 더 컸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이 본업이지만 때로는 그들로부터 힘을 얻었다. 진심으로 환자의 몸과 마음을 살폈기에 그들을 응원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었다. 책 제목 ‘당신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는 전지은 간호사가 환자를 향해 하는 말일 수도 있고, 반대로 환자들이 전지은 간호사에게 들려준 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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