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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카페] “울먹거리는 감동의 전율”

은퇴 없는 작가의 꿈, 서윤석 시인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문인이셨는데, 유독 제게 원고료 심부름을 시키셨어요.”

40여 년 의사로 사명감을 갖고 환자 치유에만 집중했다가, 은퇴하고도 5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시인으로 등단한 서윤석 시인. 돌연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물으니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서 시인은 “알게 모르게 글 쓰는 분위기에 노출돼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같은 동네에 살았던 탓에 국어 선생님 원고료 심부름을 하며 당시 문인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가운데 내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대학 갈 즈음 선생님이, 다들 글을 써서 보여주는데 너는 왜 안 보여주니?”라고 물으며 문학의 길로 적극적으로 추천했지만 생업에 유리한 학과로 진학을 결정하며 단숨에 뿌리쳤단다. 그때 국어 선생님이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소설가, 수필가이면서 대한민국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교수였다.

그 황금 손을 뿌리치고 50년을 돌고 돌아 결국에는 문학과 만난 서윤석 시인. 하지만 그는 당시를 후회하지도 또 지금에 조급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환자와 함께 걸어온 그 세월을 ‘문학을 위한 시간을 벌었다’고 표현한다. 서 시인은 “보통은 사물이나 풍경, 현상 등을 보면 글을 잘 써 내려 가지만 나는 본 것만이 아닌 내 손끝으로 마음으로 경험하거나 체험하고 느낀 것이 아니면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며 “그야말로 감성의 가장 마지막인 울먹거리는 감동을 얻은 다음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문학에서 첫 결실 역시 미국서 35년간 의사 노릇을 하며 환자와 부대끼고 보고 느낀 감성을 그대로 옮겨 담은 수필집 『헬로 닥터씨오!(2007)』다. 또 2010년 ‘시 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탄생시켜 준 작품 역시, 환자를 만날 때 늘 책상에 두고 설명을 하거나 연구를 위해 쓰다듬었던 두개골에 고마움을 담은 시 ‘고마운 마리아’다.

서 시인은 “의사 생활을 시작할 당시 남미 어딘가에서 온 15~16살 소녀의 두개골을 보며 자신을 희생하고 저와 환자들에게 새로운 등불을 주는 모습에 깊은 생명 경외심을 느꼈다”며 “그래서 더욱 좋은 의사가 되고자 노력했고, 마음으로 다해 환자를 만나다 보니 그들의 아픔에 눈물이 났으며, 그 덕분에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글을 쓸 수 있게 됐다”며 또다시 마리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2005년, 서 시인은 평생 의사의 마음만 남기고 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12년가량 지난 시간 맘껏 누리지 못한 문학열을 아낌없이 터뜨리며 시집 『고마운 마리아(2011)』과 영문 시집 공저 『I am Homeland(2014)』, 시집 『민들레꽃 피는 우리 집(2015)』을 연이어 발간, 다양한 문인 협회 활동과 함께 서울대 미주 총 동창회보 편집위원을 거쳐 현재 서울대 의대 미주동창회보인 시계탑의 편집위원장까지 맡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어떻게 이 폭발적인 열정을 참고 살아왔을까? 서 시인은 “최근 문학에 관련된 활동을 하는 걸 보고 친구들은 원래 제가 문학을 좋아했다고 하더라”며 “과거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낭독하고, 이육사의 광야를 좋아했던 모습을 되레 주변에서 기억하는 걸 보고 제 속에 문학적 열정을 새삼 깨닫고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의사를 시인으로’ 이끌어 준 일등공신은 ‘가족’이라는 서윤석 시인. 지금도 글을 쓰면 ‘정통 국문학과 문학을 전공한 아내’가 가장 먼저 읽어 주고, 이민 2세대 딸과 미국인 사위가 읽은 다음, 마지막으로 12살 손녀가 읽어서 좋다는 말이 나와야 비로소 글 한 편이 완성된다며 이를 ‘시인의 행복 계단’이라 칭한다.

그동안 함께 못다 한 시간, 지독히도 사랑하느라 웬만한 한국시는 다 읽고 서양시도 끊임없이 읽으며 최근에는 소설에도 관심이 커졌다는 서 시인. 그는 “작가는 은퇴가 없다는 게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한다”며 “과거 내가 좋은 의사였다고 자부하는 만큼,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의사였을 때의 마음가짐과 똑같이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며 옳지 못한 건 하지 않으면’ 된다”는 흔들림 없이 뿌리 깊은 소신을 밝힌다.

문득 서윤석이라는 이름에 ‘의사’를 붙여주고 ‘시인’을 붙여준 마리아가 스쳐 간다. 지금도 이 땅 위에서 그리고 서 시인의 책장 안에서 여전히 천 년을 살아가는 마리아처럼, 시인의 뭉글뭉글 피어오른 열정도 분명 천 년 만 년 살아 숨 쉬리라.



고마운 마리아
-너는 이 땅 위에서 천년을 산다

진료실 책장 위에 놓인
소녀의 머리를 본다
멕시코, 산골 어디에 살던
곤잘레스, 마리아를 본다

(중략)

검정 볼펜으로 측두에 선을 그으면
골절을 수긍하던 배심원의 눈빛도 보이고
아파하는 환자의 고통도 보인다

(중략)

마리아를 볼 때면
독한 포르말린 냄새가 눈물을 흘리게 한다

(중략)

열여섯 살 처녀 마리아
너는 늘 어린 나이에
책장 위에서 조용히 살다가
우리가 부르면 선뜻 내려와
모두에게 등불이 된다

고마운 마리아
너는 이 땅 위에서 천년을 산다


진민재 기자 chin.minja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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