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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 조선 시대 살인사건 이야기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5/22 07:01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다만 흔적을 남길 뿐. 살인사건은 시대를 막론하고 발생한다. CCTV, 통화기록 같은 명백한 증거가 없던 몇백 년 전에는 범인을 어떻게 잡았을까? 믿기지 않겠지만 조선 시대에도 과학수사와 법의학이 존재했다.

수사관들은 치밀하게 시체를 검안하고 원인을 규명했다. 살인사건 수사 지침서가 ‘무원록(無寃錄)’이었는데, 말 그대로 억울한 백성이 없게 하도록 나름의 과학수사를 펼쳤다. 당시 수사관들이 어떤 방식으로 검안했는지 ‘무원록’을 통해 엿볼 수 있는데, 강에 떠오른 시신은 우선 촉루골(두개골)을 취하여 뇌문혈(정수리)에 숙탕(따뜻한 물)을 가늘게 부어 비공(콧구멍)에서 고운 진흙과 모래가 나오는지 살폈다. 고운 진흙이나 모래가 나오면 살아있을 때 물에 던져진 것이고 나오지 않으면 죽은 후에 던져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신 콧구멍에서 고운 흙이 흘러나왔다. “이 자는 살아 있을 때 물에 던져져 죽었다.”

수직적 권력 구조가 뚜렷했던 시대, 양반에게 천민은 그저 재산의 일부였다. 그런 천민의 죽음을 수사하긴 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리던 종을 죽여도 양반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언제이며 어느 곳이 되었든 최소한의 법과 정의는 작동했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사진)은 그중에서도 신분과 권력 앞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피지배층과 여성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담고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는 사대부들은 무슨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을까? 살인의 이유는 다양하다. 돈과 이권이 개입됐거나, 치정이거나, 그냥 기분이 나빠서 죽였을 수도 있다. ‘평산 박 소사 살인사건’의 경우는 조선시대 최악의 패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사건을 보면, 정조 때 황해도 평산에서 박소사라는 젊은 여인이 죽은 채 발견된다. 고소장이 관청에 접수됐을 때에는 이미 시신 매장을 끝낸 뒤라 묘지를 파내 검험을 하기가 어려웠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박소사가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평산부사 정경증은 ‘무원록’에 나오는 검법을 바탕으로 조사를 다시 시작했다. 3년간의 긴 수사 끝에 밝혀진 진실은 시어머니의 간음이 원인이었다. 시어머니와 조카가 근친상간한 사실을 박소사에게 들키자 시어머니가 목격자인 며느리를 협박해 죽음으로 내몬 사건이었다. 억울하고 힘없는 여인네의 원을 풀기 위해서 정조는 암행어사까지 파견했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할 수 없고, 노비가 주인을 고발하지 못한다는 법률에 갇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노비의 이야기도 있다. 주인이 노비를 살해하면 장 90대의 가벼운 처벌을 받지만 반대로 노비가 주인을 살해하면 아무리 정당방위였다 할지라도 능지처사에 처한다. 효종 때, 노비 부부가 주인을 살해해 암매장한 사실이 발각돼 모진 심문을 당하고 온몸이 찢겨 죽어야 했다.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던 노비, 또 노비만큼이나 천하게 여겨졌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법적으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무참히 죽어간 하층민들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책에는 이 밖에도 과부로 사는 조카며느리가 음란하다는 소문이 돈다며 자루에 넣어 강에 던진 이른바 문중에 의한 명예살인, 남편을 죽인 진범을 찾아 14년 동안 남장을 하고 전국을 헤맨 아내의 이야기 등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진짜 이야기가 가득하다.

조선 시대 사람들도 지금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왔다. 시기와 질투, 탐욕, 원한에 몸부림치며 누군가를 죽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살인사건이 특히 더 흥미로운 이유는 유교를 숭상하고 충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 엄격한 사회 분위기 탓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살인은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표출하는 강력한 상징이다. 그래서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살인이라는 주제가 역사와 합쳐졌을 때 뒤틀린 인간의 욕망이 더 선명하게 읽히는지도 모르겠다.

이소영/VA 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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