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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심청전’ 비틀기

심청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 심 봉사 밑에서 젖동냥으로 자랐다. 효심이 지극했던 심청은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스님의 말을 듣고 인당수에 바쳐질 처녀 제물을 자처한다. 심청의 효심을 갸륵히 여긴 용왕은 심청을 연꽃에 태워 올려보냈고, 곧 왕의 눈에 들어 왕비가 된다. 심청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왕에게 맹인 잔치를 열어달라 청한다. 드디어 부녀가 만나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자 심 봉사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전래동화 ‘심청전’ 줄거리다. 그렇다면 이후는? 부녀가 해후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 하도 어렸을 적이라 언제 처음 심청전을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런데 다 커서 심청전을 꺼내 보니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심 봉사를 꾀어내 재산을 탕진하게 만든 ‘뺑덕어미’, 그녀가 몹시 궁금해졌다.

이런 물음에서 시작한 소설이 배유안 작가의 소설 ‘뺑덕’(사진)이다. 작가는 뺑덕(병덕)과 그의 어머니, 뺑덕어미를 중심에 놓고 새로운 가족 이야기를 엮어냈다.

동네에서 ‘뺑덕’이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병덕은 동생이 태어나면서 자신의 생모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모가 자신을 버린 ‘나쁜 엄마’였음을 알게 된 후 분한 마음을 주먹질로 해소하며 동네의 천덕꾸러기가 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병덕은 새어머니 곁을 떠나기로 한다. 열다섯 살에 집을 나와 뱃일을 하며 돈을 모은다. 물어물어 도착한 곳은 어느 허름한 주막, 병덕은 묵어가는 손님으로 가장해 어머니를 만난다. 처음 마주한 어머니의 모습은 험상궂고 괄괄했다. 하지만 병덕은 주막에 머무는 동안 가난한 여성으로서 모진 세상을 헤쳐 나가야 했던 어머니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뺑덕어미는 패악을 부리고 악다구니를 퍼부어도 철저히 약자였다. 가막동에 살 때 온 동네 아이들 코피를 터뜨리고 다녔어도 끝내 병덕이 약자였던 것처럼 힘이 풀린 어미의 눈은 몸싸움에 이기고도 상처받아 웅크려 들던 꼭 내 모습 같았다.



‘아들이라는 말에 앞뒤가 없어지는 여자, 뺑덕 없이도 내처 뺑덕어미로 불리는 여자. 그 뺑덕이 나라고 하면 어미는 어떤 표정이 될까?’ 아들은 매일 어머니가 내어준 상을 받으면서 속으로만 엄마를 불렀다. 그렇게 어머니의 주변을 맴도는 동안 꽁꽁 얼어있던 병덕의 마음도 어느새 녹아있었다. 해묵은 외로움과 원망을 떨쳐 내고 열다섯 소년은 그렇게 어른이 된다.
 
뺑덕어미의 한 세월은 편했을까. 아들을 빼앗긴 원망을 가슴에 묻고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괴팍해질 수밖에 없었다. 욕심 많고 의뭉스러운 여인인 줄만 알았던 뺑덕어미가 어느새 가여워졌다. 소설 ‘뺑덕’은 심청전에 등장조차 하지 않았던 ‘뺑덕’을 끌어내 그와 어머니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엮어내고 있다.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바친 것이 과연 효일까? 아버지의 병을 고치려 홀로 험난한 여정을 떠난 바리공주 이야기, 흉년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어머니에게 드렸다는 상덕이야기 등 수많은 효자 사연이 전해진다. 이야기 속 자식들은 모두 목숨 걸고 부모를 살린다. 자식의 희생을 숭고한 효심으로 여겼던 당대 사고방식이 ‘산 제물’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는데도 사람들은 ‘효’를 내세워 훈훈한 미담으로 둔갑시킨다.

그런 면에서 소설 ‘뺑덕’은 새롭다. 불효자 뺑덕은 우악스러운 어머니를 부끄럽게 여긴다. 우리 아들이 착하고 똑똑하면 좋겠다고 부모가 바라듯이 자식 또한 바라는 부모상이 있다. 하지만 뺑덕에게는 유약한 아버지, 행실이 바르지 못한 부끄러운 어머니뿐이다. 그래서 괴로웠고 많이 방황했다. 하지만 엄마를 만난 후 ‘부모라고 다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사람들은 아니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신과 생김새는 물론 억척스러운 인생까지 똑 닮은 어머니를 뒤로하고 끝내 자신이 아들이라고 밝히지 않은 채 뺑덕은 주막을 떠난다. 뱃일하면서 모은 돈을 모두 맡기고 홀가분하게 일터로 돌아간다. 처음 주막에 왔을 때나 주막을 떠날 때나 달라진 것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뺑덕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 이유는 아마도 뺑덕에게도 간절한 누군가, ‘엄마’가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이소영 / 언론인, VA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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