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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과 함께 새로운 꿈에 도전합니다"

가업을 잇는다 <1> E&C패션 배무한 회장 부녀

27년째 키워온 '청바지 왕국'
E&C 두 딸 이름에서 만들어
자체 브랜드 만드는게 목표
글렌데일에 '원 데님' 론칭


노루발 틈새로 재봉바늘이 쉼없이 오간다. 재봉틀 수 백대가 한꺼번에 만들어 내는 소리에 바로 옆 사람의 말도 잘 안 들릴 정도다.

그래도 배무한(67) 회장에게는 세상 그 어떤 소리보다도 정겹다. 여유가 조금 생길 때마다 한 대씩 두 대씩 늘려 온 기계들이다. 자식 같은 생각에 구매할 때마다 일련번호를 붙인 게 어느덧 1000번까지 왔다. 패션경기가 하락하면서 놀리던 재봉틀 320대를 최근 멕시코 티후아나 신공장으로 이전했지만 대부분 재봉틀은 LA공장에서 씽씽 돌아가고 있다. 귀에 거슬릴 법도 하지만 배 회장에게는 그저 천상의 화음일 뿐인 듯싶다.

서둘러 작업장을 둘러보는 그의 곁에는 장성한 두 딸이 있다.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벌써 10년째 디자이너로 근무 중인 큰딸 엘리자베스(34)와 3년 전 유명로펌을 그만두고 합류한 작은딸 클라우디아(33)다.



클라우디아는 USC 비즈니스스쿨과 코넬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폴헤이스팅스에서 금융과 M&A 전문가로 활동하다 합류해 운영과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다. 두 딸은 나란히 부사장 직함을 달고 봉제.의류업체의 핵심 업무를 나눠 맡고 있다.

배 회장이 막 재봉이 끝난 청바지를 들어 보며 상태를 살피자, 두 딸의 시선도 한곳으로 쏠린다. 아버지가 알려주는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있을 부모의 은퇴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배우려는 자세다.

LA다운타운 올림픽 불러바드와 에스페란자 스트리트 코너, 한블록에 걸쳐있는 E&C 패션. 건물 규모만 12만 스퀘어피트다. 프리미엄 청바지 생산으로는 미국 최고 수준의 기술을 자랑하는 '청바지 왕국'이다. 10년의 남미생활을 정리하고 1988년 LA로 재이민한 배무한 회장 부부가 1990년부터 27년째 성공적으로 키워 온 봉제 및 패션기업이다. 트루릴리전, 디젤청바지, 애버크롬비&피치, 허드슨 진 등이 만들어졌거나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

E&C패션은 원단커팅서비스로 출발했다. LA로 온 지 3년째 되던 해 창업했다. 일단 주문을 받으면 최상의 품질을 보장했고 철저하게 납기를 지킨다는 배 회장의 영업 스타일에 하청은 밀려들었다.

커팅서비스가 자리를 잡으면서 공장 한 쪽에 재봉틀을 들여 놓고 봉제공장 운영을 시작했다. 재단 능력과 디자인 감각이 좋은 아내(배정희씨) 덕이 컸다. 청바지 생산주문이 크게 늘었다.

사세를 키우면서 단순 봉제에만 머물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고가의 장비 구입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 청바지라면 재단부터 봉제, 염색, 워싱까지 원스톱 생산이 가능하도록 규모를 키웠다. 현재 E&C패션은 봉제작업을 전문으로 하고, 하청 수주는 아토믹데님, 염색과 워싱은 퍼시픽 콘셉트 론드리라는 계열사에서 분리.처리하고 있다.

이제 E&C패션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세상 누구나 아는 자체 브랜드를 내놓는 것이다. 그 새로운 꿈에는 두 딸이 함께한다. 청바지 만드는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췄다.

E&C 패션을 거쳐 간 고급 청바지 업체들만 이미 여러 곳이다. "비록 파산보호신청을 하긴 했지만 트루릴리전 신화가 E&C 패션에서 시작했다. 재단, 봉제, 염색, 워싱 등이 모두 E&C에서 이뤄졌는데 최고의 청바지라는 찬사를 받았다. E&C패션도 그런 프리미엄 브랜드를 가질 때가 됐다."

내 브랜드 갖기는 배 회장이 진작부터 공을 들여 온 분야다. 데님 오브 버추(Denim of Virtue)와 이메지네이션(imagination) 브랜드를 론칭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청바지 원청업체로부터 경쟁자로 인식되면서 생산주문이 끊기는 바람에 회사가 곤란에 처하기도 했다. "사실, 봉제업자나 의류도매상이나 내 브랜드를 갖는다는 것은 한결같은 희망이다. 하지만, 브랜드를 띄운다는 게 뜻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앞선 두 번의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실력과 자본 그리고 마케팅의 삼박자가 유기적으로 움직여 줘야 한다."

그래도 배 회장의 세 번째 도전엔 자신감이 넘친다. 부부만 애태우던 예전과 다르기 때문이다. 디자인 경력이 이미 상당한 큰딸과 변호사로 운영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작은딸이 든든히 돕고 있다. 그리고, 지난 12월 마침내 글렌데일 브랜드길의 아메카나몰 인근에 원 데님 1호 매장을 열었다. 온 가족이 힘을 모아 자신있게 내놓은 프리미엄진이다. 원 데님 매장에는 숍인 숍 형태의 '원데님 커피'도 판매한다. 밀레니얼을 타겟으로 한 원 데님은 맵시 있는 입을 거리와 분위기도 제공한다.

엘리자베스 부사장은 "매장에서 급하게 옷을 사는 시대는 지났다. 밀레니얼은 새로운 것을 찾아 경험하는 세대다. 커피를 즐기며 자신에 맞는 진을 스타일 할 수 있는 경험, 원 데님이 추구하는 콘셉트"라고 소개했다.

프리미엄급이지만 청바지 한 벌에 80~120달러 수준으로 젊은층의 주머니 사정도 고려했다. 반응도 좋은 편이다. 1호 매장 인테리어가 아직 온전히 꾸려지지 않았지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와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다. 배 회장은 "이번엔 조짐이 좋다. 두 딸이 함께하니, 힘도 난다. 멕시코 공장과 원 데님이 자리를 잡으면 우리 부부는 물러날 생각이다. E&C패션은 처음부터 엘리자베스와 클라우디아의 영문 첫 철자를 따서 지었다. 두 딸이 힘을 모아 '원 데님'을 키우며 더 큰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부모님과의 점심 가장 행복한 시간"

두 딸이 말하는 '직장생활'

"작은딸 때문에 안 된다. 남들처럼 좀 슬쩍 넘어갈 수 있는 일도 변호사인 딸이 지켜보고 있으니 모든 게 원칙대로다."

배무한 회장은 최근 E&C패션이 유명 의류체인 갭과 캘빈클라인의 인스펙션을 모두 통과했다고 자랑하면서도 작은딸 클라우디아를 흘겨봤다.

원청업체들은 하청공장에서 생길 수 있는 노동법 문제를 예방하고자 작업장 상태는 물론이고 종업원들의 임금이나 상해보험(워컴)가입 등을 꼼꼼히 살펴 보는데, 규모가 큰 기업일 수록 검사가 까다롭다. "아, 글쎄 종업원 인터뷰만 100명 이상을 하더라고. LA에서 그런 정도의 인스펙션을 통과할 업체는 아마도 별로 없을 거라고."

아버지의 말에 미소만 짓고 있던 클라우디아 부사장은 LA봉제공장들 어려움은 정말 크다고 끼어들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과 높은 요율의 워컴이 인건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공장운영이 힘들다고 말했다.

배 회장이 최근 티후아나에 봉제공장을 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원 데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큰딸, 엘리자베스 부사장은 "브랜드 인지도가 조금씩 오르고 있어 다행"이라며 화제를 바꾼다. 배 회장은 "제작 비용이 비싸지만 '메이드 인 USA'의 메리트가 여전하기에 원 데님만큼은 LA에서 모든 작업을 진행하면서 품질 유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배 회장 부녀는 잠시 티타임을 하는 자리에서 공장과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쉼없이 쏟아냈다. 동생보다 일찍 회사에 조인한 엘리자베스 부사장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디자이너로 입사했을 때는 종업원들의 리스펙트가 없었기 때문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클라우디아 부사장은 "무엇보다 부모님과 회사에서 점심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클라우디아 부사장은 6년 전 결혼을 했기에 부모와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애틋하다고 말했다.


김문호 기자 kim.moon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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