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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 ‘법과 원칙’ 기대해도 될까?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7/24 06:09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재판이 한창이다. 대한민국 헌법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것이 국민 법감정이라 하지 않던가. 사법부가 국민이 이해할만한 판결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오직 최종 선고 결과만 보이기 때문에 사법부, 특히 재판관들의 고민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쉽다. 어떤 기준으로 심의할까? 같은 죄도 양형이 다른 이유는 뭘까? 이 물음에 응답하는 소설이 있다. 현직 부장판사가 쓴 소설 ‘미스 함무라비’(사진)이다.

지하철 성추행범에게 니킥을 날리고, 얌체 운전자는 끝까지 쫓아 일갈하는 20대 열혈 판사 박차오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 정의파인 그녀는 늘 사건을 몰고 다닌다. 초임 판사의 거침없는 정의로움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서울중앙지법 44부 동료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동료들은 그녀를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감정적”이라고 평가한다. 게다가 그녀는 회색빛 근엄한 법원을 초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누빈다. 그녀를 주시하는 눈들은 그녀의 일상을 몰래 촬영해 SNS에 올리기도 한다. 거기에 붙는 해시태그는 ‘#튀는판사’, ‘#남혐판사’, ‘#미스함무라비’ 같은 각종 여성 비하 표현들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위축되지 않고 씩씩하게 편견과 권위에 도전한다.

재판장의 풍경을 떠올려보면 제일 높은 자리인 법대에는 모두 세 명이 앉아 있다. 소설에는 부장판사 한세상, 좌 배석판사 박차오름, 우 배석판사 임바른을 등장시켰다. 법원으로 넘어온 크고 작은 송사들은 말 그대로 천태만상이다. 제자를 성추행하고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교수, 재산 상속을 둘러싸고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형제·자매, 인터넷상의 잊힐 권리를 주장하는 남자의 사연. 소설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생기는 경우의 수는 무한대다. 그 경우가 아름다운 모습도 있지만 때로는 추악하다. 두꺼운 법전이나 앞선 판례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인간적 갈등이 존재하는 문제들을 배당받고 신임 판사는 골무가 닳도록 기록을 넘긴다.

그 중에서도 소주를 마시다 여주인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내리쳐 전치 3주 진단을 받게 한 전과 26범의 ‘주폭 노인’ 사연이 인상 깊다.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을 해주자는 재판장과 엄정하게 처벌하자는 임바른 판사가 팽팽하게 대립하다 결국 노인이 사는 임대주택과 사건 현장을 찾아가 보기에 이른다. 그날 박차오름 판사는 노인이 사는 임대아파트에서 진한 빈곤의 냄새를 맡았다. 이미 빈곤의 끄트머리까지 내몰린 노인은 주폭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심 끝에 재판부는 심신미약 감경 없이 노인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교도관에게 끌려나가는 노인의 얼굴을 보며 임 판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지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다. 최소한 그것이 인간 사회의 약속이다. 그런데 나약한 인간을 수렁 속에 방치하는 사회는 어떤 책임을 지는 걸까.

‘미스 함무라비’를 쓴 문유석 부장판사는 이미 올해 초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이다. 칼럼의 허리만 잘라내 보면 ‘저녁 회식하지 마라. 젊은 직원들도 밥 먹고 술 먹을 돈 있다. 친구도 있다. 없는 건 당신이 뺏고 있는 시간뿐이다. 할 얘기 있으면 업무시간에 해라. 괜히 술잔 주며 우리가 남이가 하지 마라. 남이다.’ 굳이 신문지면에서 읽지 못했더라도 SNS를 타고 널리 퍼져 유명해졌다. 속 시원한 글로 문유석 이름 석 자 보다 ‘사이다 판사’라는 별명이 더 알려졌을 정도다.

그가 쓴 소설에서도 이른바 ‘사이다 화법’이 등장한다. 문 판사는 많은 법정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저 법대 위에 무표정하게 앉아 망치를 두드리는 한심한 존재로만 판사를 그리는 것이 아쉬워 법정 활극을 쓰게 됐다고 밝힌다. 판사들에게 씌워진 신비의 베일이 불신과 오해만 낳고 있다는 반성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모든 인간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람 가려가며 평등하다. 사는 곳이 어딘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얼마를 가졌는지에 따라 법은 종종 불평등하게 변질된다. 그 불평등을 조율하기 위해 판사가 존재한다. 부디 그들이 소설 속 박차오름 판사처럼 ‘강자 앞에 강하고 약자 앞에 약한’ 참된 판단자의 면모를 보여주길 바라본다.

이소영/VA 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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