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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8/21 07:20

이소영/언론인,VA거주

만약 내 아이가 뇌성마비 장애로 몸의 어느 부분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면 그것을 지켜보는 심정은 어떨까? 매일 극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그 아이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까?

태어날 때 뇌에 손상을 입어 자신의 의지로는 손가락 하나, 눈동자 하나 마음대로 못 움직이지 못하는 뇌성마비 소년 숀 맥다니엘이 있다. 공식적인 아이큐는 1.2에 불과하다. 음식을 받아넘기기도 힘들다. 하루에 몇 번씩 발작을 일으킨다.

세탁기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들썩거리며 쾅쾅쾅 소리를 내는 것처럼. 숀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 5살 이후에 본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할 수 있는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다. 어렸을 때 숀은 누나와 ‘선생님 놀이’를 하면서 책 읽기를 배웠다. 텔레비전, 라디오, 가족들의 대화가 그의 선생님이다.

물론 그 놀이는 모두 누나가 일방적으로 떠들고, 숀은 반응 없이 가만히 듣는 방식이었다. 숀이 14살이 됐을 때, 아빠가 그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 비극적인 것은 아빠가 그런 계획을 세운 이유가 그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는 뇌성마비 장애우 숀의 시선으로 풀어나가는 소설이다. 비참하도록 암울한 상황이어도 숀은 14살 특유의 재기발랄한 매력을 발하면서 솔직 담백하게 자신을 고백한다. “쓸모없는 몸뚱이 안에 갇혀 있는 게 어떤 느낌이냐고? 그걸 말이라고 해? 좌절감을 느껴 본 적이 있냐고? 지금 누구 놀려!”

숀이 늘어진 팔다리에서 유일하게 자유를 맛보는 순간이 하루 몇 번의 발작이다. 발작이 일어날 때면 숀은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그의 몸을 벗어나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 타닥타닥, 타닥 발작이 일어나면 숀은 육체를 벗어나 하늘을 날거나 솟구쳐 오르거나 시공을 가로질러 누비고 다닌다. 가족들은 악마의 손에 놀아 나는 듯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통스러워하지만 숀의 머릿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찬란하고 역동적인 14세 소년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누나의 친구 앨리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그런 상상 말이다. 그에게는 발작이 기쁨이고 살아있다는 방증이다.

이야기 속에는 두 아빠가 등장한다. 한 명은 아이의 고통스러운 발작을 보다 못해 아들의 얼굴에 베개를 덮어씌운다. 이후 아버지는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간다. 나머지 한 명이 숀의 아버지다. 아들의 이야기로 시를 써 퓰리처상을 받고 유명해지지만, 아이의 고통을 볼 수 없어 그 책임을 아내에게 떠넘기고 집을 나가버린다. 숀의 아빠는 가정을 포기할 만큼 아들의 고통이 힘들었다.

남들이 보기에 숀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상태로 평생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숀의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가 끝내줘야 하지 않나 고민을 거듭한다. 아들의 고통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설령 그 일이 용서받지 못할 범죄라 할지라도. 언뜻 보면 아들을 살해하려는 무정한 아버지 같아도 자세히 보면 아들을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아빠의 절절함이 읽힌다.

“나는 죽기 싫어요.” 뇌성마비, 식물인간, 저능아인 나에게도 삶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숀의 목소리에서 아들이 살아있어야 하는 그 절실한 이유를 찾아내려고 발버둥 치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를 쓴 테리 트루먼 작가에게도 숀과 같은 아들이 있다. 부모와 의사소통조차 할 수 없는 아들을 보면서 ‘저 아이에게 인생이란 어떤 의미일까’를 물었다. 이 소설 속의 숀처럼 작가의 아들 역시 숨겨진 천재일지, 감자 칩과 로큰롤을 사랑하는 재치꾸러기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들의 정신세계는 의사조차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뇌성마비 장애우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아빠가 무슨 권리로 아들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단 말인가. 사랑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과연 그 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지 생각해본다. 죽음으로써 아이를 해방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까지도 부모의 책임에 포함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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