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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석~윤시내 부부의 북유럽 자유여행-②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청서
매년 노벨상 수상식과 만찬 열려
왕자처럼 늠름한 스톡홀름
한여름 축제 즐기는 시민들

탈린에서 스톡홀름 가는 배에는 저녁 식사가 두 번(5시30분과 8시30분, 1인 33유로)이다. 우리는 이른 저녁을 택해 식당에 가니 지정된 자리로 안내해 준다. 서두르지 말고 맛을 음미하며 조금씩 먹으라던 여행전문가의 충고를 떠올리며 포도주와 훈제연어로 시작한다. 47년째 같이 살아온 부부 사이에 꼭 해야 할 말이 남아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마주 앉아서 화난 사람처럼 말없이 먹기만 할 수도 없는 일이라,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얘기들을 흘린다. 음식비평가인양 이 청어는 어떻고 저 소시지는 어떻고, 케이크는 뭐가 제일 맛있을까 하면서, 45달러어치를 먹으려면 아직도 한참 더 먹어야 할 텐데 하며 웃는다.

다음 날 새벽 갑판으로 나오니 해안은 물안개가 뽀얗게 깔려있고, 나무에 둘러싸여 빨간 지붕만 보이는 오막살이, 그나마도 없는 작은 바위섬, 길게 물살을 남기는 흰 돛단배 등이 손에 잡힐 듯 지나간다. 미국과 캐나다 사이 로런스 강의 ‘천 개의 섬’보다 훨씬 더 길고 넉넉하며 아늑한 해안 풍경이다.

선착장에 기다리고 있던 초로(初老)의 택시 운전사는 20년 전 이란에서 이민 왔다며 악센트 있는 영어로 스웨덴 칭찬에 입이 마른다. 사람들은 관대하고 친절하며 사회는 안전하고 국민 모두 건강보험이 있고 교육은 대학까지 무료라고. 세금을 많이 낸다고 불평하지만 세금 낸 돈으로 아이들 교육했다고 생각하면 결코 많은 것이 아니라며, 자기는 스웨덴을 사랑한다고 한다.

헬싱키 숙소가 허름했기 때문에 스톡홀름에서는 약간 웃질인 베스트 웨스턴(아침 포함 약 160달러)을 골랐는데, 와보니 주변이 쓸쓸하고 좀 외떨어진 곳이다. 여행 중에는 숙소가 늘 그 도시의 방향과 거리의 기준이 되는데, 숙소를 시외로 정했기 때문에 스톡홀름 도시 안의 지리가 명확하게 머릿속에 잡히지 않는다. 다음 날 10시에 있는 무료도보 안내 (Free Walking Tour) 집합장소를 찾아 헤매다 결국 놓치고 말았다.



북구 최대의 도시 스톡홀름은 반듯하고 웅장하며 격조 높은 건물들이 바다를 향해 당당하게 서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높은 시계탑과 붉은 벽돌의 시청 건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청으로 손꼽히며 내부 안내를 받을 수 있는데(100 크로너, 약 13달러) 간단한 한글 안내서도 있다. 매년 12월10일 노벨상 수상식과 축하 만찬이 이곳에서 열리며, 만찬 후 무도회가 열리는 ‘황금빛 방’은 거대한 벽이 스웨덴 역사를 묘사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다행히도 무료도보 안내 그룹과 마주치게 되어 안내자의 양해를 구한 뒤 합류한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 중 하나는 도시에 얽힌 숨은 역사를 듣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톡홀름 오페라 극장 앞에서는 18세기 말 왕권 강화를 위해 의회와 맞섰던 구스타브 왕 3세가 가면무도회 중 바로 이 극장 앞에서 암살당했다는 것이며, 한 은행 앞을 지나가면서는 은행에 들어온 강도가 여직원 서넛을 비좁은 금고실에 인질로 가뒀는데 며칠 지나자 인질 중 하나가 강도를 마치 보호자인 양 두둔하게 돼 그런 심리 현상을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이라 한다는 것이다. 또 라울 월렌버그는 2차 세계대전 때 헝가리 유대인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한 외교관으로 스웨덴의 쉰들러라 불리는데,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5년 봄 러시아 군인에게 체포당한 후 종적이 묘연하여 그를 기리는 공원이 자그마하게 만들어졌다는 것 등이다.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를 맞아 스톡홀름은 공휴일이고,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귀한 햇볕을 즐긴다. 바닷가에 있는 티볼리 공원(무료)에는 화관(花冠)을 머리에 쓴 아가씨들과 손자에게 솜사탕을 사주려고 기다리는 할아버지, 튀긴 강냉이 한 바구니 놓고 먼저 먹으려 장난치는 아이들과 롤러코스터가 바다 쪽으로 추락하듯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가슴 졸이는 구경꾼들로 흥겹다. 도시 한편에 이런 놀이공원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좁은 공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오밀조밀하게 놀이기구를 설치한 것이 이채롭다.

티볼리 공원에서 한참 섬 안쪽으로 들어가면 세계 최초의 야외 박물관 스칸센이 나온다.(입장료 100 크로너) 30만 제곱미터의 넓은 대지에 스웨덴 전통 가옥들이 재현되어 있고, 옛날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빵집, 약방, 소주 만드는 양조장, 대장간 등이 있다. 약방에 들어가 보니 조그만 서랍이 수십 개 벽에 붙어 있고, 약초를 써는 칼과 저울도 있어서 마치 한약방에 들어온 기분이다. 좁은 바지, 하얀 주름이 달린 꼭 끼는 윗도리를 입은 반백(半白)의 남자는 실제로 직업이 약제사인데, 옛날 복장을 하고 방문객을 맞아 설명하는 것이 좋아 자원봉사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자연산 약초가 약의 주원료였지만 이제는 화학 재료가 90% 이상인데, 아스피린은 아직도 버드나무껍질에서 추출한 성분을 원료로 사용한다고 하여 깜짝 놀란다.

간단한 점심을 사서 야외 벤치에 앉아 먹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햇빛을 시기해서인지 스톡홀름에 있는 동안 매일 소나기가 한, 두 차례 지나갔다. 비가 그치자 넓은 잔디밭 한편에 설치된 무대에 스웨덴 전통의상을 입은 남녀 악사들이 나와서 노래하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른다. 역시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가 빙 둘러선 구경꾼들에게 중앙으로 나오라고 하자 어린이, 젊은이, 노인 모두 중앙으로 나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오리, 돼지, 토끼 흉내도 내며 빙글빙글 돈다. 음악이 바뀌자 이번에는 장대에 달린 색색의 헝겊을 잡고 서로 엇갈려 가며 돌아간다. 우리가 메이폴(Maypole) 춤이라 부르는 민속춤이다. 햇볕은 따갑고 춤과 노래는 흥겹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스톡홀름에는 한국 식당이 두엇 있는데 한 군데는 공휴일이라 문을 닫고, 다른 한 군데에 미리 전화를 걸어 영업하는지 확인한 후 찾아간다. 여기서도 3일 시내 교통권을 사 아무 부담 없이 다닐 수 있어 좋다. 같은 거리라도 모르는 길은 더 멀고 혹시 잘못 가는 게 아닌가 싶어 행인에게 묻고 또 물어 겨우 찾는다. 이른 저녁이라 손님은 하나도 없는데 식탁에는 김치찌개 냄비가 화로 위에 놓였고, 반찬도 몇 가지 차려져 있다. 주인이 나와 인사를 하며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자기는 35년 전에 공부하러 왔다가 눌러 앉았노란다. 영업이 잘 되느냐고 물으니, 요새 한국에서 북구라파 여행이 최고 인기라서 하루에 수백 명이 올 때도 있고, 오늘도 예약한 손님들이 좀 있으면 오기 때문에 미리 상을 차려놓았다고 즐거운 비명이다.

헬싱키보다 스톡홀름은 물가가 비싸다. 커피는 한 잔에 7달러, 음식점에서 음식을 사고 뜨거운 물을 한잔 달라고 해도 1달러 넘게 내야 한다. 하기야 뜨거운 물도 전기 써서 덥혀야 하고 종이컵도 사려면 돈이 드니까 뜨거운 물 한 잔 값을 받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그런데도 야박한 생각이 드는 걸 보니 풍족한 미국에서 살아서 우리가 공짜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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