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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아들도 한약재 냄새 맡고 자랐죠"

[가업 잇는다] '영선한의원' 모자 한의사

아버지 등 '한의사 패밀리'
아들 치료하기 위해 도전
"어느새 동행… 행복해요"


친정 아버지와 아들까지. 3대째 가업을 잇는 한의원이 있다.

LA한인타운 6가와 아드모어 애비뉴가 만나는 곳의 LA메디컬센터 3층에 자리 잡은 영선한의원이다. 이선례 원장이 운영하는 영선한의원은 지금의 자리에서만 20년, 웨스턴길 동양선교교회 인근에서까지 더하면 올해로 꼭 30년 째 같은 이름으로 고객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원장의 부친은 한국에서 한의원을 운영했다. 지금은 이 원장의 올케가 맡아 하고 있다. 이 원장은 친정 아버지가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한의학 공부를 위해 중국과 일본에도 유학했다고 소개했다.1남 5녀 중 딸로는 셋째인 이 원장의 맏언니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의사로 일 하고 있으니 한의사 가족이다.



이 원장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잔심부름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한약을 포장하고 쓰고 난 침도 정리하면서 그야말로 어깨 너머로 많은 것을 봤지요. 그런 경험과 분위기가 저와 제 아들까지 한의사로 일하게 만든 또 다른 배경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 원장이 미국에서 뒤늦게 한의사 공부를 하고 30년 외길을 걷게 된 데는 그동안 가슴 깊이 묻어뒀던 뭉클한 사연이 있다. "아들(해리 이)이 지금은 키가 6피트나 될 정도로 훌쩍 컸고, 벌써 5년 째 어엿한 한의사로 가업을 잇고 있으니 정말 감사할 뿐이죠."

1984년 LA 이민 길에 오른 이 원장에겐 절박함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행동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어떻게 해서든 고쳐주고 싶다는 희망이었다.

"친정 아버지가 약사이고 한의사였잖아요. 아버지도 손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침도 놓고 한약도 짓고. 하지만, 차도가 금방 생길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었지요. 애는 점점 커가고 …. 아무래도 아들을 키우기에는 미국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양의도 한의도 고치지 못한 아들의 병. 이 원장은 인생을 걸고 아들을 직접 고치겠다는 다짐했다고 한다. "엄마니까, 그러니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미국에 온 이 원장은 뒤늦게 한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학비에 생활비까지 마련해야 하는 어려운 도전이었다. "한국에서 다이어트 약이나 건강보조식품 등을 들여다 팔았어요. 친정 도움도 좀 받고 미국에 오기 전까지 아버지 한의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 도움이 됐지요."

그래도 공부는 쉽지 않았다. "애 돌보고 생활비 마련하고 밤에는 한의학 공부하고, 돌이켜 보면 그걸 다 어떻게 해냈나 싶네요. 사는 것도 힘들고 공부는 더 힘들고.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새벽에 옆집에 들릴까봐 물을 틀어 놓고 울기도 참 많이 했지요. 절절하게 기도도 많이 했어요. 한바탕 그런 소란을 떨고 나면 공부가 기가 막히게 되더라고요. 신기하죠."

아들 때문에 학교도 많이 빠졌고 어렵게 공부했지만 한의사 시험은 한 번에 보란 듯이 붙었다. 한의사 자격증을 딴 후 이 원장은 한의원을 열고 본격적으로 아들 치료에 매달렸다. 침도 놓고 약도 지어서 먹이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을 다했다고 했다. "좋은 약이란 약은 다 먹인 것 같아요. 그 덕인지 키도 훌쩍 컸고, 팔.다리 마비증상도 사려졌어요. 아직 말이 조금 어늘한 구석이 있지만 95% 이상 정상활동이 가능해요." 해리 이 한의사는 결혼도 했고 2명의 자녀도 뒀다. "며느리가 너무 착해요. 게다가 변호사이기도 해요." 이 원장 표정에는 아픔을 털어낸 행복함이 스친다.

물론, 초보 한의사가 하루 아침에 베테랑이 될 수는 없었다. "처음엔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실력이 안 되나보다'하고 포기할 생각도 몇 번이나 했어요."

이 원장은 자신의 몸에 직접 침을 놓으며 환자의 고통을 느끼고 효능을 체크하는 방법까지 썼다고 했다. 고혈압, 당뇨, 관절통, 신경통, 목디스크, 갑상선, 피부병 등, 환자 치료에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유사 사례를 연구하고 한의 서적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며, 치료법을 찾는 노력을 했다.

"돈을 얼마나 내더라도 병을 고치겠다고 온 사람들인데 한의원 문을 나설 때는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떳떳하게 돈도 받을 수 있는 거고요."

"이 원장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환자를 맞는 생각은 마찬가지라고 했고, 아들에게도 강조하는 말이라고 했다. 환자 치료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이 원장은 많은 병이 비만에서 비롯된 점에 주목했다.

"당뇨나 심장비대증, 무릎이나 발목 관절통 등이 살이 찐데서 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 많은 질병 중 50%는 살만 빼도 고칠 수 있는 것들이죠."

이 원장이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한방비법으로 지방분해, 체질개선 등에 효과적인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거운 체중 때문에 다리가 저리고 고혈압, 당뇨병, 혈행장애 등의 증상이 오는데, 침과 한약으로 잘만 다스리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이 원장은 환자들에게는 무엇보다 건강한 식단과 소식, 그리고 규칙적인 운동을 할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어려울 때만 어머니에게 도움 청해요"
한의사 모자의 ‘분업’


한의사가 된 엄마는 처음부터 아들이 가업을 잇기를 바랬다. 아들이 알게 모르게 친구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수없이 본 탓에 나중에라도 자립해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고 싶은 탓이었다.

이선례 원장은 아들이 고등학생 때부터 직장생활을 하도록 했다. 보험회사에서 빌링 스테이트먼트 작성하는 것을 배우게도 했고, 병원이나 교회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했다. "보험회사에서 일을 시킨 것은 나중에 영선한의원에서 일을 하더라도 기본적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지요."

다행히 아들도 엄마 말을 잘 따라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곧바로 한의사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장학생으로 입학한 UCLA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다. 이후 아들은 카이로프랙틱을 공부하겠다고 했다. 성인이 된 후로는 이 원장도 아들의 뜻을 존중했다. 그런데 6개월 정도 지난 후 한의사 공부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환자를 금방 치료하는 모습을 몇 차례 본 후 한의학이 더 매력적이라며 전과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사우스베일로 한의과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해리는 5년 전 한의사 자격증을 땄고, 마침내 영선한의원에서 이 원장과 나란히 한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해리 한의사는 영선한의원에 별도 진료실을 운영 중이다. 어려울 때는 어머니 조언을 구하지만 그만큼 한의사로서 자신감도 넘친다. 해리 한의사의 고객은 주로 젊은층이고 타인종들이다. 한인 환자가 대부분인 이 원장과 업무 분화가 잘 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아팠고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환자 심리는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빨리 낫게 하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김문호 기자 kim.moon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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