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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자코메티의 조각과 고행상

박재욱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법사

20세기 조각사에 있어 부정할 수없는 불세출의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스위스 1901-1966).

그는 인간존재의 허약함과 덧없음, 소외에 기인한 내면의 고독에 초점을 맞춰, 형상을 응축 시킬 대로 시킴으로써 외로운 겨울나목처럼 표현했다.

절망에 휩싸인 '좀비'같은 그의 청동상은 가늘고 길게 늘여져 과장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거칠고 무거운 동적 질감으로 표면을 불규칙하게 마감했다.

그는 형상의 중량감을 덜어내고자 깎아낼 수 있는 최대한을 깎아낸 조상(彫像)으로, 고뇌에 찬 인간의 내면을 강렬하게 드러낸 동시에, 고도의 시적 은유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능히 선(禪)적이다.



숯덩이 같은 작품들, 특히 대표작인 '걷는 남자'나 '가리키는 남자'의 지향점, 그가 희구한 절대가치와 궁극은 아마도 고독으로부터의 해방인 '자유'이겠다.

이 여위고 메마른 기념비적 작품들을 대할 때면, 오래고 혹독한 고행으로 고갱이만 남은 고오타마 싯다르타의 '고행상(苦行像)'이 오버랩 된다.

오래전 이 고행상을 처음 마주했을 때, 온몸을 휩싼 전율과 감동으로 한동안 넋을 잃고 말았다.

2-3세기 작품으로 높이 83.3cm. 결가부좌한 채 선정에 든 형상이며,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소장품이다. 깨달음을 향한 여정에서, 단식고행의 처절한 고통을 아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간다라 미술 중 최고 걸작으로 높이 평가한다.

싯다르타는 고해에서 자맥질하고 있는 중생을 구하고자, 태자가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와 권력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6년간 스스로 고통의 길을 택했다.

싯다르타가 출가할 당시 인도는 고행이 일반적인 수행방법이었다. 육신이 장애가 되어 고통의 원인인 욕망을 끊을 수 없다 하여, 육체에 극단의 고통을 가함으로써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역설이었다.

송아지의 배설물까지 삼키다 고행의 막바지엔 하루에 콩알 한두 개로 연명한다. 그마저도 끊고 만다.

피골상접. 뱃가죽은 등에 붙어버렸고 서까래가 삭아서 무너질 듯 앙상하게 드러난 가슴과 갈비뼈, 그 위로 드러난 선명한 힘줄, 마른 갈대와 같은 팔과 다리, 어깻죽지는 뼈만 남아 앙상하다. 움푹 함몰된 볼, 마치 앉아있는 미라다.

그러나 동굴처럼 깊이 파인 눈, 크고 둥근 눈동자만이 샛별처럼 빛난다. 고행의 끝자락에 몸은 삭아 바스러졌어도 눈동자는 살아 새파랗게 빛을 뿜고 있다.

극한의 고통을 극복하고 무한자유를 얻은 자의 경지다. 육신의 살과 수분이 빠져나갈 때, 마음은 더욱더 맑아지는 법. 육신에 뿌리를 둔 모든 욕망을 멸한 경지가 바로 이 순간일 터이다.

생사를 건 고행 끝에, 비파의 줄이 너무 느슨하거나 팽팽하면 소리를 낼 수 없음을 깨닫고, 양극단을 떠난 고락중도(苦樂中道)의 수행으로, 마침내 싯다르타는 위없는 깨달음에 이른 성자, '부처(Buddha)'가 된다. 고통에서 해방되는 위대한 길을 연 것이다.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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