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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에어] "너희 아버지 뭐하시냐"

"어린 시절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를 쓸 때가 제일 싫었다." 미혼모였던 어머니의 선택으로 친부가 아닌 이모부의 성을 따라 살아온 한 연예인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심경이다. 초등학교 시절 '가정환경조사서'라는 것이 있었다. 새 학기가 되면 TV, 전화기 등 집에 있는 물건은 물론 부모의 출신학교와 직업까지 반드시 써내야 했다. 심지어 '아빠가 대학 나온 사람 손들어'라며 아예 대놓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시인 황지우는 가정환경조사서의 기억에 대해 "학교에서 지식이 아니라 수치심을 배웠다"라고 했다. 가정환경조사서가 아니라 빈부채점표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대체 이런 걸 왜 하게 할까 쓸 때마다 의아했다.

가정환경조사서를 졸업하고라도 살면서 '아버지는 뭐하시냐?'라는 질문은 적지 않게 받게 된다. 뭉뚱그려 대답하면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무슨 사업을 하는지 구체적인 답변이 요구된다. 사람을 만나고 직업을 구하는데 부모가 하는 일이 왜 필요하고 궁금한지는 알 수 없다.

최근 갑질 폭행을 한 한화그룹 셋째 아들 김동선 씨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번 폭행이 처음이 아니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폭행과 함께 곁들인 말들 때문에 비난이 더 거세다. 김씨는 대형로펌 신입 변호사들과 술을 마시다 "허리 똑바로 펴고 앉아라, 나를 주주님이라고 불러라. 존댓말을 써라"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터져나온 말 "너희 아버지 뭐하시냐".



김 씨는 문제가 불거지자 기억이 안 난다고 해명했다. 이어 "취기가 심하여 당시 그곳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거의 기억하기 어렵다"라며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피해자 분들께 엎드려 사죄드리고 용서를 빈다고"라고 밝혔다.

자식사랑이 지극하기로 소문난 한화 김승연 회장도 거들었다. "자식 키우는 것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다"라며 "아버지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무엇보다도 피해자 분들께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신입 변호사들에게 '너희 아버지가 뭐하시냐?'라고 한 것은 질문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느냐?'로 들린다. 서른도 안된 재벌 아들은 취기를 핑계로 변호사들에게 아버지의 재력을 과시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했고 경찰도 내사에 착수했다. 지난 폭행 사건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지만 이번에도 무사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유전무죄 판결이라는 의심 속에 2번의 폭행을 넘겼지만 수사결과에 따라 상해죄가 인정된다면 김 씨는 다시 법정에 서게 되고 보통의 경우 가중처벌을 피할 수 없다. 김씨는 사과문을 통해 적극적인 상담과 치료를 받겠다는 의지를 나타냈지만 김씨의 상습적인 폭행이 상담과 치료로 해결될 수 있을지 아니면 처벌이 필요할지는 법원이 내릴 결정이다.

본인동의 없는 개인 정보 수집과 활용은 2011년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금지됐다. 교육부도 자율기재방식의 학습환경조사서 양식을 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사립초등학교가 신입생들에게 출신 유치원과 부모의 종교 등을 적게 하고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부모의 월소득과 월세보증금 액수까지 적게 하는 등 한국사회에 가정환경조사서, 아니 빈부채점표는 여전히 존재한다. 빈부채점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너희 아버지 뭐하시냐'는 질문도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부소현 JTBC LA특파원 bue.sohyu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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