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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민자 차별의 사슬을 끊어라

"처음 들어가면 살아 있는 닭을 싣는 일부터 한다. 손가락마다 닭을 한 마리씩 끼워 넣어 10마리를 한꺼번에 트럭에 던진다. 일주일만 일하면 피부병에 걸려 '닭살'이 된다. 업주는 좁은 아파트에 우리를 합숙시키고 전기도 넣어주지 않아 촛불을 켜고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영주권을 받을 희망으로 일했다. 매니저에게 잘 보여 몇 달 후 비닐 포장 일을 맡았다. 일도 조금 쉬워지고 1년 만 일하면 영주권을 받을 줄 알았는데 모두 헛일이 됐다. 나는 이제 불법체류자다."

'닭공장' 영주권을 신청한 버지니아주 한인에게서 10여 년 전 들은 얘기다. 그는 합법적으로 영주권을 신청했지만 담당 변호사가 닭공장을 둘러싼 대형 이민사기 사건으로 붙잡혔다. 그리고 영주권의 꿈을 잃었다. 30대였던 그는 지금도 미국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게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불체청년들을 뜻하는 '드리머(Dreamer)'가 됐을 게다.

불체자들은 사연이 다르다. 때로는 불합리한 이민행정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극심한 자연재해와 극악한 생활환경의 생존자들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연쇄이민(Chain Migration)'을 막겠다고 한다. 가족이민을 줄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민자들은 지난 수십 년 간 '연쇄(Chain)'가 아닌 '사슬(Chain)'에 묶여 있다. 이민자들을 차별하는 사슬부터 풀어야 한다.

1965년 미국 정부는 유럽 출신 백인만 주로 받아들이던 이민문호를 아시안과 라티노에게도 열었다. 그리고 1986년 농장 노동자 등 불법체류자 270만 명에게 합법 신분을 제공했다. 이유는 '온정'이 아니라 '경제'였다. 그 뒤 이민자들은 50여 년간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닭공장 만이 아니다. 이민자들은 모두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을 책임졌다. 농장에서 허리가 부러져라 뙤약볕을 맞으며 곡물을 수확하고 과일을 땄다. 극심한 막노동에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졌지만 계절 노동자로만 고용되는 합법적인 차별에 시달렸다. 많은 농장 노동자들이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남았다. 1986년의 '불체자 사면'은 이 같은 저임금 중노동에 나설 미국인이 없었기에 내려진 조치였다. 또 육류가공업체들이 이민자들을 고용했다. 이유는 물론 값싼 노동력이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소고기를 만들기 위해 소를 죽이고, 피를 뽑고, 내장을 꺼내 버리는 일을 했다. 이민자들은 모두의 옷도 책임졌다.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대기업들이 중남미로 공장을 옮기기 전까지, 그래서 무더기로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봉제업체들이 문을 닫기 전까지 바느질은 이민자들의 몫이었다. 이민자들은 집을 짓고, 이삿짐을 나르고, 거리와 집을 청소했다. 대도시 다운타운에서 아침 일찍 길거리로 나서 하루 일당을 주는 건설업자.이삿짐센터.청소업자에게 품을 파는 값싼 일용 노동을 했다. 9.11 테러 참사 현장을 청소하는 일에도 이민자들이 동원됐다. 유독성 가스가 넘치는 그 곳에서 폐가 썩으면서 쓰레기를 치웠다. 이민자들은 1970년대부터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우범지역에 가게를 차렸다. 장사를 하며 누구나 한 번 또는 여러 번 머리에 총구를 들이미는 범죄에 시달리고, 업소 지붕이 뚫리고 물건을 잃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땀 흘려 성공하는 꿈은 잃지 않았다. 이민자들은 미국 대도시 낙후 지역 경제를 되살린 개척자들이다.

그런데 이제 이민을 축소하겠다고 한다. 한인 20만 명 등 불체자 1200만 명의 앞날은 아직도 어둡다. 그래서 합법과 불법을 따지지 말고 이민사회가 더 힘을 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아이들에게 떳떳할 수 있다. 미국의 유색인종 이민은 아프리카에서 붙잡혀온 흑인들을 배 밑창에 묶는 사슬에서 시작됐다. 아직도 사슬이 남아 있다. 인종 차별과 이민자 차별은 뿌리가 같다. 차별의 사슬부터 끊어야 한다. 불체자 합법화가 시작이다.


김종훈 /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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