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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내 탓 아님을 깨닫는 데 8년 걸려"

한국의 현직 여검사가 8년 전 선배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후 말할 수 없는 심적 고통을 겪었다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JTBC 방송과 인터뷰를 가져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이를 문제 삼을 경우 피해자가 제2, 3의 보복 피해를 당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 여검사의 '미투' 선언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주인공은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근무하는 서지현 검사로 2010년 10월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검사로부터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후 법무부 감찰 라인에서 진상 조사에 들어가려 했으나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최교일(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피해자는 가만 있는데 왜 들쑤시냐"며 관계자를 호통쳤다고 한다. 이후 서 검사는 부당한 좌천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범행 가해자인 안태근은 우병우 라인으로 승승장구하며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내다 우병우 관련 사건을 담당한 수사팀에 돈봉투를 돌린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두 사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고 있다. 파렴치범들의 전형적 대응이다.

피해자인 서 검사의 인터뷰를 듣는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서씨는 시종 침착했지만 분노와 울분, 회한이 섞인 그의 감정은 곧 울음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서씨는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데 고민이 컸다고 한다. 자신의 조직에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점, 또다른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놓고 번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이 말이 꼭 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성추행 사건 후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는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는 것을 깨닫는 데 8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용기를 주기 위해 나왔습니다." 피해자인데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그 마음의 응어리가 어떻게 풀릴 수 있을까.

손석희 앵커는 앵커 브리핑을 통해 "성폭력 범죄의 경우 가해자와 동조자, 혹은 방관자들이 만들어내는 가장 비겁한 방법은 피해자의 수치심과 자책감을 이용하는 것"이라며 "이는 세상 곳곳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힘없는 또 다른 서지현들이 당했고, 참으라 강요당하고 있는 부조리"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번 사건을 돌아보면서 한국적 남성중심의 권위주의 문화가 몸에 밴 수많은 한국 남성들이 과연 성폭력 가해자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추행이라는 단어조차 공유되지 못하던 시절, 권력과 금력을 쥔 남자들의 영역에서 수없이 발생했을 서지현 사건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이 아직도 세상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채 오히려 피해자가 자책감으로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이런 부조리한 세상. 그러나 가해자들은 너무도 태연하게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을 어찌 쉽게 견딜 수 있을까.

서지현 검사는 인터뷰 말미에서 검찰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에 많은 네티즌들이 절대로 사표를 내지 말고 더욱 승승장구하라고 격려하고 있다. 한 사람의 용기있는 여성으로 인해 수많은 말못할 피해자들이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다면 서지현 검사는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를 위해 큰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가해자인 안태근은 최근 기독교에 귀의해 "깨끗하고 성실하게 공직생활을 해왔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까지 했다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이원영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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