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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마일 산길에서 삶을 배운다

신현식 기자의 대륙 탐방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acific Crest Trail)

"공허한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토록 바라던 길 끝에 서있었다. 목젖 끝에 묵직한 먹먹함 때문에 기쁨의 눈물도 감격에 겨운 몸짓도 나오지 않았다. 내 눈앞에 있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완료 표지석, 캐나다 국기, 마지막 풍경이 될 초록의 꽃잎들을 둘러볼 뿐이었다.

더는 갈 길이 없어져 버린 캐나다의 매닝 파크에 도착했을 때 후련함과 아쉬움이 뒤섞여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지나온 트레일에 고통과 인내가 녹아있었다.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숨죽여 흐느끼던 눈물과 땀방울이 트레일 안에 짙게 흩뿌려져 있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매일 목이 타들어갔고,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을 피하기 위해 한 줌 그늘만을 찾아 헤맸었다. 물이 있어야 할 장소에는 물이 말라서 벌레가 떠다니는 물을 마셔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하비 사막을 건넜다. 방울뱀과 전갈을 조심해야 했고 선인장 가시들이 손에 박혔다. 발의 물집들은 끔찍했다.



사막에서의 하이킹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매일 포기하고 싶었다. 기상 이변으로 온통 눈 천지인 시에라 네바다의 산맥을 넘었다. 눈이 점점 녹으면서 불어난 얼음장 같은 강물들은 더 거칠어졌다. GPS 오류로 길을 잃었을 때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음식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곰을 조심해야 했다. 저녁이 되면 항상 불을 지펴 젖은 신발과 양말과 몸을 말렸다. 땅에서 올라온 냉기로 선잠을 잤다.

오리건주 곳곳에서는 산불이 심해 날리는 재와 연기를 마시며 걸었다. 워싱턴주의 거친 능선들을 따라 패스들을 넘고 황홀한 자연 환경을 봤다. 내리던 비는 눈으로 바뀌었고 칼바람과 함께 눈은 쌓여갔다. 원망스러웠던 따가운 햇살을 못 보니 우울해져 갔다.어쩌다 햇살이 비추면 젖어버린 텐트와 침낭, 각종 옷들을 꺼내어 말린다. 햇살을 내려 받으며 축복과 행복을 느꼈다. 마지막 구간 워싱턴 주 산길은 힘들었지만 경이로웠다.

내가 떠나왔고 돌아갈 멀리 보이는 도시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과 빌딩의 불빛들로 찬란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이 시간을 겪고 캐나다의 국경에 도착해 표지석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꿈 같은 시간이었다."

이 글은 2017년 4월 22일부터 9월 25일까지 158일 만에 2700여 마일을 걸어 PCT를 완료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정힘찬씨의 글이다. 정힘찬씨는 멕시코 국경을 출발해 얼마 지나지 않아 발에 심한 물집이 생겨 치료와 휴식을 했다. 지난 5월 하이커들을 후원하고 도와주는 LA의 캠핑, 트레일 전문가 이주영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LA에서 일주일 넘게 요양하고 다시 출발했다. 그리고 8월 18일 오리건주 케스케이드 락 PCT의 날 행사장에서 다시 만났다. 지난번 만났을 때 두렵고 지친 모습과는 다르게 밝은 모습이었다.치과의사인 정힘찬씨는 제3국에서 선교와 봉사를 하다 PCT에 도전했다.

한 여성이 석 달 동안 캘리포니아주, 오리건주, 워싱턴주에 이르는 트레일을 했고 이를 책으로 썼다. 책은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와일드'로 영화화 됐고 한국에 PCT가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현재는 한국의 젊은이들도 도전을 하고 있다. 세계에서 PCT를 걷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무엇 때문에 이길을 걷느냐는 질문에 누구도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걷는다. 값지고 소중한 인생을 경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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