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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까짓것 세상이 다 가지라고 하자

조그만 구멍 세 개를 일렬로 파고 가운데 구멍 아래로 한 개를 더 판다. 구슬로 그 구멍들을 먼저 지나오면 이기는 놀이였는데 우리는 구멍 넣기, 굴 넣기라고도 불렀지만, 꽤 고상한 이름이 있었다. 바로 봄들이었다. 구멍들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놀랍지만, 봄으로 다시 돌아 들어온다고 봄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무릎을 치게 하는 재치다.

만물에 봄이 들고 있다. 심심풀이로 심어놓은 채소가 싹을 틔우고 자라간다. 복숭아 꽃봉오리가 나뭇가지를 뚫고 맺히고, 나무들은 성급하게 녹색 여름옷을 꺼내 챙겨입고 있다. 왜 이렇게 부산하고 발랄해졌을까.

해가 길어졌다. 겨울이 그어 놓은 선(동지)을 해가 넘어버린 것이다. 땅도 나무도 그대로였지만 해가 길어졌다. 그리고 세상은 봄으로 물들었다.

스펄전의 말처럼 그리스도의 무덤은 겨울이 그어 놓은 선과 같았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로 그 선을 넘어버렸다. 그리고 만물은 새로워졌다. 단단한 마음을 뚫고 감사의 봉우리가 맺히고, 서로를 보던 무덤덤하고 싸늘했던 눈초리들은 서두르듯 따뜻한 미소를 꺼내기 시작했다. 죄 가운데 죽어버렸던 사랑이 꿈틀거리고 싹을 낸다. 영원한 생명이 죽음의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태초에 "어두움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속에 비추셨다. 부활이 들었다. 부활의 능력이 우리를 얼어붙게 했던 모든 선을 넘어버렸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영원히 길어졌다.

그뿐인가. 차가워진 신학교에 그어진 불의와 욕심의 선도 넘으셨고, 미세 먼지 탓인지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그 교단 총회에 그어진 혼돈의 선도 넘으셨다. 편법으로, 관례로 청빙도 안수까지도 정당화하던 수치의 선도 넘으셨고, 세상도 머뭇거릴 권력과 돈에 대한 탐욕의 선도 넘으셨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선을 넘지도 않고 돌이켜 회개하지도 않는다면 이는 주님과 함께한 것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나는 주님과 함께 그 선들을 넘은 것도, 그 주님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해야 한다. 부활이 들었다. 주님의 생명이 꿈틀거린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이 지겨운 사선을 넘은 사람들이다. 까짓것 세상이 다 가지라고 하자. 우리는 부활을 가졌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지녔다. 부활의 기쁨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자고 한다면, 이 벅찬 가슴으로 마음을 찢자고 한다면 여전히 이상한 말인가.

sunghan08@gmail.com


한성윤 목사 / 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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