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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난 후 반세기…여전히 남아있는 인종차별

오늘 마틴 루터 킹 암살 50주년

'버스 내 흑백차별' 시위 이끌며 두각
비폭력 노선 고집하며 지지층을 넓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최고 연설 꼽혀
정치권 공작.도청 "비열한 거짓말쟁이"
노벨 평화상 수상…50년 전 오늘 암살


1968년 4월 4일. 멤피스의 한 모텔 2층 발코니에서 총성이 울렸다. 백인우월주의자였던 제임스 얼레이가 미리 잠입해 있다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머리에 총격을 가한 것이다. 킹 목사와 함께하던 사람들이 응급조치를 했지만 병원 이송 중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미국 인권운동의 얼굴로 활약했던 그는 39세의 젊은 나이로 멤피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오늘은 킹 목사가 암살당한 지 정확히 50년이 되는 날이다. 50주기를 맞이해서 그의 삶과 우리의 현실을 돌아본다.

▶인권운동에 헌신한 삶



킹 목사는 1929년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침례교 목사인 '목사 가족'이었다. 당시만 해도 애틀랜타에는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었고 가족 전체가 인종차별주의자에게 멸시와 폭행을 당했지만 이에 논리적으로 항의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대표적 흑인대학 중 하나인 애틀랜타의 모어하우스 대학 신학과를 졸업했고 펜실베이니아주 체스터에 있는 크로저 신학교를 나왔다. 신학교를 마친 뒤에는 보스턴 대학교 대학원 신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보스턴에서 기독교적인 사회참여에 대한 신념을 굳힌 그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교회에서 담임 목사직을 맡게 됐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건 투쟁을 하게 된다. 로자 파크스라는 여성이 버스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경찰에 체포되고 연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젊은 목사였던 그는 로자 파크스의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의 지도자가 됐다. 그는 탁월한 연설 능력과 카리스마로 5만 여명의 시민을 동참시킨 행진의 맨 앞에 섰다.

1956년 12월 연방 최고 재판소에서 버스 내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내고 난 후에는 그야말로 '전국구 스타'가 됐고 흑인 민권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흑인 해방 운동과는 달리 비폭력 노선을 고집한 그는 일부 흑인 지도자들한테 비판받기도 했지만 지지층을 넓혀 나갔다.

1963년 8월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에서 25만 명의 관중을 두고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을 했다. 지금도 킹 목사하면 떠오르는 명연설이며 최고의 영어연설문으로 꼽힌다. 1964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높아지는 이름과 격해지는 견제

노벨상까지 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자 흑인 민권 운동에 반대하는 세력으로부터 견제도 심해졌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킹 목사에 대한 도청을 지시한 바 있다. 50년 동안 FBI 국장의 자리를 지키면서 공작 정치를 했던 에드거 후버는 킹 목사가 비열한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했다.

후버 국장은 다른 많은 유명인사나 정치인들에게 하듯이 킹 목사의 사생활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그가 여성편력이 심하다는 내용을 신문사에 보내기도 했다.

물론 백인우월주의자들에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킹 목사가 민권운동에 투신한 이후로 그와 그의 가족은 항상 위협에 시달렸다. 비폭력주의자로 유명했던 그가 가족의 보호를 위해 총을 소지하고 다닐 정도였다.

1968년 4월 3일 테네시주의 흑인 청소 노동자 파업투쟁을 지원하러 간 킹 목사는 암살자가 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청소노동자들 또한 피신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는 "나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오래 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암살당했다.

▶여전한 인종차별

주류언론은 킹 목사 암살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미국 사회의 모습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AP통신은 IT, 생명과학, 건축, 공학 등 고임금 직종에서 흑인들이 훨씬 더 적은 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식업계나 건물 보수, 단순 사무 등의 상대적 저임금 직종에 흑인 종사비율이 높다고 지적했다.

킹 목사가 박사학위를 받으며 자신의 신념을 공고히 했던 보스턴은 이런 모습을 극명히 보여주는 지역이다. 컴퓨터나 수학 관련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백인의 수는 흑인의 27배에 달했다.

독일의 통신사 dpa 통신은 50년 전 킹 목사가 생을 마감한 멤피스도 피부색에 따라서 사는 지역이 다르며 흑인의 생활조건이 훨씬 열악하다고 전했다. 멤피스 대학의 안드레 존슨 교수는 "우리가 계속 투쟁하면 현시대의 문제를 논의하지 않게 되는 날도 올 것"이라며 차별과 편견에 맞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루터 킹 목사의 어록

"옳은 일을 하기에 적합한 시기란 없습니다. 바로 지금이 그 순간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홍수를 막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용기라는 둑을 쌓아야만 합니다."

"폭력은 적을 파괴하지만 비폭력은 적을 친구로 만듭니다."

"악에 대항하거나 항의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실제로 악에 협력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중요한 일에 대해 침묵하는 날 우리의 생명은 저물기 시작합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열정적이면서도 온화해야 합니다. 또 이상주의자면서 현실주의자여야 합니다."


조원희 기자 cho.wonhe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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