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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275> 중남미 독립사1

이번 회부터 중남미의 독립사를 조망해보자.

식민지인 중남미 각국과 본국인 스페인 사이에서 벌어진 독립전쟁은 1810년에 시작돼 1824년 페루의 아야쿠쵸 전투를 끝으로 대략 15년 간에 걸쳐 진행됐다. 그런데 이렇게 단기간 동안에 이렇게 많은 나라가 독립한 역사가 없었다. 그러면 이러한 중남미 독립혁명은 어떠한 배경에서 일어났을까.

첫째 1808년 본국인 스페인의 왕 까를로스 4세가 나폴레옹 1세(1769-1821. 재위 1804-1815)에 의하여 폐위되고 나폴레옹의 형인 조세프가 본국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 본국과 식민지 간의 연결이 끝났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18세기에 꽃을 피운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이 컸다.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에밀'은 중남미 독립의 복음서 역할을 했다.



셋째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이다. 프랑스의 루이16세와 왕비 앙트와네트의 처형 소식은 그들을 경악케 했으나 왕권신수설에 대한 회의가 증폭됐다.

넷째 본토인들과 식민지 태생의 백인들에 대한 본국의 불평등 정책이었다. 식민지 출신은 정치 경제 군사 종교등 어느 분야에서나 본토인들과 차별을 받았으며 고위직을 차지할 수 없었다.

다섯째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가혹한 스페인의 식민지 경제 정책이 본국에 대한 식민지인의 반감을 누적시켰다. 스페인은 본국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하여 가혹한 관세를 부과했으며 특히 외국 상품에 대하여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더구나 식민지의 상품이 본국의 상품과 경쟁이 될 때는 식민지 상품의 생산을 즉각 중단시켜서 식민지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여섯째 독립전쟁이 일어났을 때 스페인은 프랑스령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증원군 파병을 기대할 수 없었다.

▶문의:(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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