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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289> 시몬 볼리바르4

에콰도르를 해방시킨 계기가 된 피친차 전투를 승리로 이끈 볼리바르는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그 경륜이 절정에 이르렀다. 피친차 전투에서 승리하고 키토 시내로 진군해 들어갈 때 키토의 여성들은 모두 발코니에 나와 그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좁은 길거리로 꽃다발들을 던졌다. 그중 한 여인이 볼리바르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그날 밤 열린 승전 축하 연회장에서 볼리바르는 그녀와 재회했다. 그녀는 마누엘라 사인스였으며 그 후 영웅의 곁에서 로맨틱한 생애를 빛나게 했다.

볼리바르는 자기가 해방시킨 5개국(베네주엘라. 콜롬비아. 파나마.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대통령이 되었으며 각각의 공화국들은 부통령들이 통치했다. 볼리바르가 비록 5개국의 대통령을 겸임했으나 이미 내부적으로 분열의 조짐이 싹트고 있었다. 1830년 공화국 독립에 대한 아무 준비나 철학이 없이 권력과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각 지역 토호들과 반란 세력들을 제압하는데 지친 볼리바르는 더 이상의 권력을 포기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20여년 간 전쟁터를 누비고 5개국을 해방시켰으며 5개국 대통령을 역임한 영웅 볼리바르는 끊임없는 암살 음모와 더럽기 짝이 없는 권력에 대한 염증으로 그의 조국을 포기한 것이었다. 정치가로서 패배를 인식하고 고뇌에 찬 볼리바르가 죽음을 앞두고 되뇌였던 말이 있다. "이 세상에는 가장 멍청한 바보가 3명이 있다. 첫번째는 그리스도 두번째는 돈끼호떼 마지막이 나다."

볼리바르는 산타 마르타의 한 침상에서 결핵으로 임종하면서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구술했다. "우리들은 혁명을 위해서 몸 바치는 동안 배울 시간이 없었다. 아메리카는 이제 통치가 불가능하다. 마치 혁명에 몸을 내던진 사람이 바다를 경작하는 것처럼 ~"

볼리바르가 죽음을 맞이한 날은 1830년 12월 17일 이었으며 그때가 47세였다.



▶문의:(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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