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향기] 가장 먼저 청해야 할 것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한 6,27)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영원한 존재만이 줄 수 있다.

영원한 존재인 하느님이 줄 수 있는 그것을 '사람의 아들'이 주겠다는 것은, '사람의 아들'이 곧 하느님이란 뜻이다.

사람은 무한한 자유를 갈구하지만 어딘가에 매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이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에 매이게 되고 그것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데 그때 그밖의 다른 것은 전부 배경이 된다.

부모 손잡고 수도원에 견학 온 꼬마가 부모 손잡고 온 다른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그 아이와 장난칠 때, 그 아이의 관심사는 온통 그 여자 아이밖에 없다. 부모님도 수도원도 그 꼬마에게는 모두 배경이다.



심지어 하느님마저도 그 꼬마에게는 배경일 뿐이다. 사람은 자신이 바라보는 것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최고의 것이 아닌 것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할 때 그 사람의 초월역량은 축소된다. 얼마든지 더 뻗어나갈 수 있는데 작은 것에 머무르게 되고 그 세계 속에서 아등바등 살게 된다.

미국의 소년원에 수감된 한 소년이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었다.

거친 생활 속에서도 소년에게 기쁨을 줘 어디든 품고 다녔던 그것은 다름 아닌 생쥐 한 마리였다. 그 소년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대상이 오직 생쥐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그 소년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연상케 한다.

사람은 최고의 것을 추구하지 않는 한 그보다 못한 것에 매이게 되고,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 잡게 되는데, 이런 측면에서 우리에겐 최고의 가치 및 하느님에 대한 배움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빵의 이적을 경험한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 배를 타고, 산을 건너, 그분이 어디에 있든 찾아내려 했다. 그 모습은 흡사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는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살고자 하는 것은 생명체의 자연스러운 욕구이고 그 사람에게 가족을 부양할 책임마저 생겼다면 그의 욕구는 더욱 더 처절해지겠지만, 그것이 공동선을 위협하거나 축소시킨다면 그것은 본연의 생존욕구를 왜곡시키는 일이다.

예수님을 찾아 나섰던 군중에게, 곧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소신을 버리고 모순적인 상황과 타협하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들려줄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하느님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사람의 생존욕구를 실현하는 길이고, 자유의 길이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비결인데 ….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요한 6,27)

park.pio@gmail.com


박비오 신부 / 천주교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