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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을 한결 같이 살아온 열혈 청춘

노재원
노재원 기자

[시카고 중앙일보] 발행 2018/09/12 미주판 3면 기사입력 2018/09/12 14:34

노재원이 만난 사람 김창범 전 한인회장
회장•이사장 타이틀만 29년
“왕성한 사회 활동 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미안”

열혈 청춘.
시카고에서 15년을 살면서 그 분을 만날 때마다 떠올리는 단어다. 분명하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명확한 주장.

공교롭게도 시카고 중앙일보 재창간일인 지난 5일 팔순을 맞은 김창범 전 한인회장은 시카고에서만 50년을 산 대표적인 시카고언이다.

시카고 한인회장을 비롯 미주 총연 이사장, 한인사회발전협의회장, 동우회(파독 광부 모임) 회장 등. 그의 이름 뒤에는 수 많은 직책이 자연스레 따라 붙는다. 그런 김 회장을 감투쓰기 좋아하는 인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커뮤니티와 이웃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이 그렇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불의를 보면 못 참았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가만 있을 수 없었다”는 김 회장은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좋은 얘기만 하라고 하지만 그 말이 나에게는 불의를 외면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소리로 들린다.” 김 회장의 말이다.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일곱살 때인 1945년 부모를 따라 서울로 이주, 후암동에서 성장했다.

1964년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잘 살아보겠다’는 한가지 꿈을 품고 독일로 건너가 광부가 된 그는 타인종에게 맞아 피를 흘리며 울고 있는 동포를 보고 한인들을 규합, 힘으로 응징하는 등 평생을 ‘열혈 남성’으로 살았다.

독일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뉴욕을 거쳐 1968년 4월 시카고에 도착한 그는 직후 또 다시 ‘사건’을 벌인다.

시카고에 먼저 온 독일 광부 출신 동료가 그를 한인 환영 모임에 데려가면서 “독일에서 왔다고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는데 외려 “독일에서 온 김창범입니다”라고 큰소리로 자기소개를 한 것.

당시 시카고 한인사회는 대부분 유학생들로 구성돼 있어 독일 광부 출신임을 잘 밝히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김 회장이 이를 거리낌없이 공개하면서 동료가 좌불안석이 된 셈이다.

결국 자신을 모임에 데려간 동료와 주먹다짐까지 하게 됐다는 김 회장은 “클락길에 있던 시카고 최초의 한식당 삼미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잘못 한 것도 없는데 나를 감출 이유가 없었다. 지금 애틀랜타서 살고 있는 그 동료와도 오해를 풀고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시카고에서 독일 출신 광부들의 모임인 동우회가 1973년 처음 조직되었고 이후 유럽 등 전 세계에서 같은 이름으로 모임이 생겼다.

여느 초기 이민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공장 노동-청소업-세탁업까지 닥치는대로 일을 한 그는 70년대 말,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한인회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든다. 재도전 끝에 1980년 제15대 시카고 한인회장에 당선된 그는 한인들의 참여를 제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함스우드 파크에서 3천 여명이 참석한 2박3일 간의 한인 단체 야유회, 다운타운 호텔에서 1,500여명이 참석한 연말 파티 등 지금 생각해도 큰 행사를 자주 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시카고에서 50년 사는 동안 29년 간 회장•이사장직을 가졌다는 그는 “나 혼자만 잘 살기보다 더불어 살아야 하고 특히 이민자인 우리는 단결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시간과 노력, 돈을 쏟아부었다.

“외부 활동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참여했다고 자부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가족들에게 소홀했던 같아 너무 미안하다”고 김 회장은 말한다.

“한인회장 활동을 두고 집사람과 갈등을 빚었는데 이 때문에 결국 헤어지게 됐다. 당시 아홉살이던 큰 아들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아버지로서 너무 미안하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이틀에 걸쳐 만났던 그는 가족과 형제들을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여러 차례 토로했다. 남동생 2명과 여동생 2명을 둔 그는 사회활동을 하면서 동생들로부터 여러 차례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은 한 번도 돕지 못했다고 한다.

2004년 미주한인사와 2014년 시카고 한인이민사 발간을 주도한 김 회장은 일부에서 출판비 관련 의문을 제기한 데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미주한인사는 배건재씨와 장영준씨가 일부 재정 지원을 해주고 박만종씨가 후원했을 뿐 내 주머니와 동생들의 도움만으로 했다. 시카고 한인 이민사 때는 재정 부분은 일절 관여하지 않고 아예 장영준씨와 최동춘씨가 맡아서 했다. 도움을 주거나 협조도 하지 않으면서 뒤에서 이런 저런 얘기만 하는 이들을 보면 그 동안의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양심을 걸고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했는데 수고했다는 말은 고사하고 구설수에만 오르고 정말 잃어버린 삶, 헛되이 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애정을 갖고 있는 한인사회가 최근 다소 침체된 느낌이라는 김 회장은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곳에서 주류사회와 당당하게 경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코리안 아메리칸은 가슴은 한국인, 머리는 아메리칸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건강 비결은 1주일에 2~3차례 헬스 클럽에서 가볍게 운동하는 것.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비결은 마음 가짐이라고 강조한다. “평생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마음 속에 불편함을 담아두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돈과 권력 앞에서 비굴하지 말자. 불의와 싸우는 용기를 잃지 말자. 약자의 눈물을 외면하지 말자.’

자신의 인생 3가지 원칙을 털어놓은 김 회장은 올 연말께 자서전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자서전이라기 보다 회고록이며 참회록”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한인사회가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1세와 2세의 세대 교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많은 한인들이 결집력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구심점 마련이라고 당부했다.

*인터뷰 후기: 김창범 회장과의 인터뷰서 들은 ‘한국 전쟁 당시 일화’ ‘북한 고위층과의 시카고에서 만남과 방북 뒷이야기’ ‘홍준표 의원과의 참정권 논쟁’ ‘동향인 이준 열사 따님과의 인연’ 등과 ‘부모님 이야기’ ‘이혼-사별-재혼’과 같은 가정사는 한정된 지면 탓에 다 옮기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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