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향기] 이야기를 위한 변명

적절한 내용과 비중의 예화(이야기)는 성공적인 설교의 필수 조건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진리의 말씀'이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주로는 이야기 자체가 갖는 적지 않기 효용 때문이다.

'사피엔스'라는 통찰력 있는 인류 역사서로 일약 세계적 저자가 된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이야기(허구, fiction)는 인류 문명의 원천이었다. 애초에 정보 공유를 위해 발달했던 언어는 '꾸며낸 이야기'를 전달하게 되면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을 대규모로 동원하여 공통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는 전설이나 신화와 같은 '이야기'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이라는 대역사는 국민 모두가 파라오의 신성(神性)과 내세를 믿지 않았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알고 함께 믿는 '이야기'를 통해 수많은 개체가 일사불란하게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류를 다른 종보다 우위에 서게 한 결정적 차이가 아닐까 한다.

우리 주변에서는 이야기가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스타는 그 인물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이야기의 후광을 업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온갖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정상에 오르게 된 성공담에 사람들은 쉽게 매혹 당한다. 제임스 딘처럼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스타는 그야말로 '신화적' 존재로 남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진실인가? 당연하게도, 이야기와 현실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야기 편에 서서 두 가지 변명을 해볼 수 있겠다. 첫째,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전지적인' 신이 아닌 한, 결국 각자의 틀로 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불가지론까지 내세울 것도 없다. 더 설득력 있고 이 글의 논지에 부합하는 것은 다음 변명이다. 정치인들의 프레임 공격에서 보듯이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대다수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주도해 온 중요한 사상이나 이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의 자리를 내주어야 했지만, 당시에는 대중이 진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역사를 진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때로는, 한발 더 나아가 주식시장의 이야기처럼 많은 사람이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이야기(소문)가 현실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프랑스어에서는 'Histoire(이스트와르)'라는 하나의 단어가 이야기와 역사를 모두 가리킨다. 그 밖의 여러 언어에서 이야기와 역사는 어원이 같다. 민족이건 개인이건, 사람은 이야기로 세상을 파악하며, 이야기로 짜인 복잡한 씨줄과 날줄 사이에 자신의 좌표를 찍고,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과의 거리로 자신을 파악하는 존재이다.

옆구리에서 태어나시고,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는 부처님의 신화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경전은 역사서라기보다는 신앙고백서로 봐야 한다. 역사적 사실 관계를 따지기보다는, 이야기가 품고 있는 본의를 헤아려 보는 자세가 종교 경전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교무 / 원불교 LA교당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