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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전쟁 없는 평화가 먼저다

"낮에는 태극기를 흔들며 이승만 대통령을 부르짖다가, 밤이 되면 인공기를 내걸고 김일성 장군 노래를 불러야 했지. 이념은 무슨…살아 남으려면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교실 밖에서 '통일'을 처음으로 마주했던 대학 1학년 때, 어머니가 조용히 해주신 이야기다.

포탄이 퍼붓지는 않았지만 마을에는 밤과 낮을 바꿔 다른 색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총을 앞세워 진주했다. 당시 10대 소녀였던 어머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 죽거나 다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아 너희 세대들이 태어난 것이니, 너희들만큼은 싸우지 말고 화해하고 살아야 할텐데..." 어머니는 당시 끝내 살아남지 못했던 친구들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고 하셨다.

최근 남과 북, 미국 지도자들이 오가고 평화에 대한 약속을 줄줄이 내놓고 있어 통일에 대한 열망과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논란도 적지 않다. 하지만 70년의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고 통일을 앞당기는데 가장 큰 전제는 무엇이어야 할까. 갑작스런 경제 부흥도 아니고 전세계의 리더가 될 것이라는 주목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70여 년 전 밤이 되면 숨죽여 태극기와 인공기를 바꿔 내걸며 가족의 생사를 눈물로 확인해야 했던 소녀의 바람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순진한 것일까.

대전제는 '진정한 평화'여야 한다. 다시는 민족이 서로 총을 겨눠서도 안되고, 외부의 간섭으로 민족이 피를 흘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정전과 함께 공식적인 평화 조약이 먼저다. 이 갈 길이 먼 여정에서 남북의 지도자와 위정자들은 모든 사심을 버려야 한다. 비단 위정자들 뿐인가. 여기엔 기업인, 문화인, 언론인 등 전문성을 가진 모든 이들의 노력과 정성, 인내가 간절히 필요하다.



정권의 성격이 무엇이든지, 남북 정권의 책임자가 누구이든지 평화는 '민족의 소명'이어야 한다. 애국과 매국의 경계선도 그 위에 그려져 있다. 어떤 정치인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단순한 문제에 또다시 억메이지 말자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작금의 통일 움직임에 환호한다고 무조건 문재인 현정부를 지지하는 것으로 오도되거나, 향후 국제사회에서의 발생할 수 있는 북한의 가능한 비정상적인 행위에 침묵하자는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의 지도자들은 통일을 이루는 과정의 심부름꾼이자 봉사자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과정은 당파 이익을 위한 공허한 몸짓이 되고 말 것이다. 평화를 가져오는 노력이 충분해 진다면 경제 협력과 발전은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믿는다.

남과 북의 장점과 시너지는 당연히 한반도의 위상과 경제 현주소를 바꿔놓을 것이다. 포탄으로 쑥밭이 되었지만 시련속에 다시 도시를 세운 평양, 계층 갈등과 경제 불안 속에서도 초고속 성장을 이룬 서울이 '평화'라는 돌파구로 새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또 하나 분명히 할 것은 '우리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는 침탈하거나 협박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자. 남의 민족의 고통을 밑천 삼아 성공하는 나라는 결국 비참한 말로를 겪게 된다. 혹 아직도 통일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배척하지 말고 설득해야할 일이다. 그들에게도 무서운 총칼아래 숨죽인 10대 소녀의 경험은 '간접 경험'으로 끝나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전쟁 당시 소년 소녀였던 지금의 70~90대 어른들의 공포와 상처를 이해하자.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고 도망가고 싶어하는 그들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통일은 무의미하다.

미국과 열강들을 설득하는 만큼 우리 안의 걱정도 함께 품고 포용하자. 평화로 가는 길은 DMZ에 70년 뿌리깊게 박혀있는 대전차 지뢰를 제거하는 것보다 수만 배 더 많은 열정과 노력을 요구할 것이다.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통일은 우리 후세들을 전쟁과 가난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선배들의 큰 과제다. 이 과제는 그런 공감대로 시작해야 한다.

통일 이라고 쓰고 '전쟁없는 영구적 평화 먼저'라고 읽자. 그게 바로 제대로된 시작이다.


최인성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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