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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민역사를 쓴다] '토종 한국인'이 만들어낸 미국 스타트업 신화…건강·운동 앱 '눔(Noom)' 정세주 대표

관련 업계 1위 자리 차지한 대학 중퇴생
"사회에 도움 되는 일 해라" 아버지 유언

비즈니스 성공 비결은 '절박함'과 '진솔함'
전통 다이어트 업체들과 전면 대결 박차

2012년부터 3년 8개월간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건강.운동 어플리케이션(앱)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당뇨예방 프로그램을 수주해 '앱 사용비 보험 수가 적용 대상'이라는 새로운 판도를 개척하고 있는 눔(Noom)은 유학 경험은커녕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에서도 중퇴한 '토종 한국인' 정세주 대표가 절박함과 진솔함으로 일궈낸 스타트업(Start Up)이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를 위해 자신만의 식단과 다이어트 스케줄을 짜주는 '라이프 스타일 코치' 앱 눔은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무려 4500만이 넘는 다운로드 횟수를 자랑한다. 올해 매출액만 5000만 달러가 넘는 눔은 지난해에는 CDC의 당뇨 예방사업(Diabetes Prevention Program.DPP)에 채택돼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국(CMS)을 통한 보험 수가 적용대상으로 선정, 프로그램 개시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정 대표는 암 전문의였던 아버지와 할아버지 두 분을 모두 암으로 잃고 나서 2002년 재학 중이던 홍익대학교를 중퇴하고 미국행을 택했다. 당시 한국에서도 '대기업 취업'에 매달리기 싫어 희귀 음반 판매 사업을 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었지만 한국 시장이 생각보다 빨리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판단돼 사업을 접고 미국행을 택했다.

큰 꿈을 가지고 뉴욕에 도착한 정 대표는 어렵게 모은 돈으로 뮤지컬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사기를 당해 젊은 나이에 3억 원에 달하는 빛 더미에 올라앉고 주변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사업 실패 후 한국으로 돌아갈까 잠시 고민했다는 그는 "대학 중퇴라는 어마어마한 배수진을 치고 뉴욕행을 택했기에 돌아갈 수 없었다"며 "대신 아르바이트로 때수건, 방향제등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헬스케어 앱을 구상한 정 대표는 2007년 당시 구글 수석 엔지니어였던 아템 페타코브와 창업을 했지만 처음엔 자본 부족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당시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느라 체중이 크게 감소했다는 정 대표는 어려운 시절 되려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돈이 없어서 할렘에서 쫄쫄 굶으며 살았지만 틈날 때면 저렴한 맥주를 사 들고 가서 유럽에서 이민 온 동네 친구들이랑 어울리던 시간이 되려 영어회화에도, 문화 차이 극복에도 도움이 됐다"는 정 대표는 "그때 어울리던 친구들로부터 자존감을 높이고 남을 평가하지 않는 태도를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로 '절박함과 진솔함'을 꼽는다. 투자자 유치를 위해 참석했던 네트워킹 이벤트가 "처음에는 배 속에 쥐가 날 정도로 고역"이었다는 정 대표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말문이 막혀 쭈빗거리거나 서로 다 아는 투자자들과 기업가 사이에서 멀뚱하게 서 있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단칼에 투자를 거부한 사람도 다시 찾아가 피드백을 요청하면 오히려 친절하게 조언을 주는 모습에 용기를 얻었다.

"여기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만 하려고 하지, 남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잘 들으려는 노력은 별로 안 하는 것 같다"고 느낀 정 대표는 '투자 받기는 틀렸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뭘 고치면 되겠냐는 질문으로 진솔함을 내비쳐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고 그들의 조언으로 사업 계획을 다듬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과 면담하는 것을 보고 "영어를 예쁘게 하는 건 중요하지 않구나"라고 느꼈다는 정 대표는 그 후 보다 편안하게 사람을 대하기 시작했고 투자자와 이야기하는 나름의 패턴도 익혔다. 그는 "내가 정치하는 사람도 아닌데 버락 오바마처럼 말 할 필요 없잖아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털털하고 친근한 인상의 정 대표와 달리 그의 회사 눔은 공격적이고 빠른 변화를 추구한다. '런·빌드·메져(Learn·Build·Measure)'로 칭해지는 눔의 사업전략은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우고(Learn) 직접 재연(Build)해 본 후 사업 가치를 측정(Measure)하는 절차를 통과한 아이디어만을 실행에 옮긴다. "스타트업 특성 상 새로운 아이디어는 계속 쏟아지는데 그걸 다 실행에 옮길 수 없으니 빠른 실험을 통해 걸러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격변하는 앱 사업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우선주의'다. 우리는 돈만 주면 앱을 만들어주는 앱 에이전시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정 대표는 실제로 미국의 큰 기업들과 사업을 할 때도 사업 계획서에 "귀사의 필요에 따라 앱을 변형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는다고 했다.

계약에 눈이 멀어 고용주의 의견만 듣다 보면 실제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편의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는 것이 정 대표의 신념이다. "아파트 시공사가 아무리 예쁘게 집을 지어 놓았대도 실제로 부엌을 둘러보면 주부 입장에서 부족한 것이 많듯, 앱도 유저의 피드백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것이다.

눔은 앱 디자인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코칭에서도 유저 입장을 먼저 고려한다. "다이어트 하는 사람이 치킨.맥주 먹으면 안 되는 거 몰라서 먹는 것 아니잖습니까"라고 반문하며 그가 입을 뗐다. "열심히 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상황이 어려워서, 혹은 동기부여가 부족해서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사람한테 계속 지적질과 비난만 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이런 그의 신념은 기업 대상 세일즈에 대한 고민도 해결해 줬다. 정 대표는 "앱 시장은 실사용자 사이에서 인정 받으면 B2B(business to business·기업 간 업무)가 자연스레 따라온다"며 "기업 대상 세일즈 팀을 따로 두지 않아도 협업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눔은 사용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지난 2016 년부터 500명이 넘는 라이프스타일 코치를 고용해 사용자와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사용자들을 코치하는 서비스를 새로 도입했다. "저렴한 가격대에 일괄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던 기존의 전략보다 멤버십 요금은 높아졌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라고 한다.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 코치가 개별 사용자들과 모바일 환경을 통해 매일 연락하며 관계를 형성하기에 그에 따른 체중·건강 관리 결과도 월등히 좋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개별 관리 시스템의 기반을 닦은 눔은 올해 들어 SNS.TV광고 등을 통해 전통적인 다이어트 업체들과 전면 대결에 임했다. 정 대표는 "얼마 전에는 오랜 역사의 웨이트 워처스(Weight Watchers)의 CEO가 직접 전화해 광고 게재 중단을 요청했다"며 자랑스런 표정으로 웃었다.

앞으로 헬스 앱 시장 전망에 대해 정 대표는 매우 낙관적이다. "우리가 업계 1위라고 해도 현재 미국시장의 사용자 수는 전미 과체중 인구의 0.2%에 불과하다"는 정 대표는 "앞으로도 성장할 기회가 많다고 믿는다"고 자부한다. 앞으로는 CDC와 당뇨예방 프로그램을 준비한 경험을 토대로 고혈압·신부전증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김아영 기자 kim.ahyoung@koreadaily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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