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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예술이 된 '낙서'

선사시대 동굴벽화로 유명한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나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가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은 동물적인 본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마치 곰이 자기 영역과 힘을 표시하기 위해 두발로 서서 최대한 높은 곳에 발톱 자국을 남기듯 말이다. 또 9000년 전 암각화로 지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르헨티나의 리오 핀투라스 '손의 동굴'을 보면 마치 벽에 손을 대고 스프레이를 뿌린 듯 오늘날의 그래피티를 연상시킨다.

그래피티(Graffiti)의 사전적 의미는 긁거나, 새기거나 스프레이를 이용한 낙서를 뜻한다. 주로 공공장소나 건물 등에 소유주의 승인 없이 남겨지기 때문에 대부분 불허되고 있으며 재물을 훼손하는 밴달리즘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와 같이 환영받지 못하는 탓에 주로 야간에 신속하게 작업이 이뤄지고 있으며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낙서를 통해 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래피티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현대 그래피티의 아버지'로 알려진 데릴 맥크레이가 1960년대 말 필라델피아 일대에서 '콘 브레드'라는 서명을 벽에 남기면서부터다. 이어 1970년대 초 뉴욕시 지하철과 벽에 'TAKI 183'이라는 글자가 곳곳에 남겨지며 대중들의 궁금증을 자아내자 뉴욕타임스가 추적에 나섰으며 그리스 출신의 '디미트라키'라는 이름의 청년이 자신의 이름을 줄인 TAKI와 집주소 183을 나타내기 위해 남긴 것으로 밝혀지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글씨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 퍼지기 시작한 그래피티는 그림까지 더해지며 규모도 커지게 됐고 건물 미화를 위해 합법적인 벽화(Mural)로도 활용되면서 거리 예술로 자리 잡게 됐다.



그래피티가 대중 예술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27세에 요절한 흑인 천재작가 장 미셸 바스키아와 역시 32세에 사망한 키스 해링의 역할이 컸다. 두 작가 모두 정치·종교·사회 변화를 주제로 메시지를 전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존 작가 중에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뱅크시가 독보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영국 출신의 뱅크시는 자칭 '예술 테러리스트'라며 현대 예술시장의 불합리성과 모순을 비판하는 동시에 화제가 되는 시사 이슈 풍자에도 블랙유머를 곁들인 심플하면서도 임팩트가 강한 작품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뱅크시는 이번 소더비경매에서 140만 달러에 낙찰된 '풍선과 소녀'를 파쇄하면서 다시 한번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경매사상 유일무이한 사건인데다가 자신이 미리 계획했음을 동영상을 통해 공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절반만 잘린 채 멈춘 작품이 오히려 희소성과 창의성 때문에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나오자 뱅크시는 당초 완전 파쇄를 계획했다며 또 다른 동영상을 공개했다. 뱅크시는 이전에도 미술 작품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비평해 왔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뱅크시가 공개한 분쇄기 설치 동영상에서 설치된 칼날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비롯해 12년전 설치한 분쇄기 배터리가 여전히 작동할 리 없다는 점, 얇은 캔버스 그림과 액자 무게가 비정상적으로 무거운데다가 뒷면 중앙에 조그마한 창이 있어 내부를 볼 수 있음에도 세계적 명성의 소더비 경매장이 작품 검토시 발견하지 못했나 등등 SNS상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낙찰자는 그림을 인수하기로 했다고 한다. 경매장에 쉽게 나오지 않는 뱅크시 작품인데다가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행위예술의 창작물이 됐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나 싶다. 길거리 낙서로 끝날 수 있는 그래피티를 대중이 열광하는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뱅크시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박낙희 / 사회부 부장·OC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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