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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예술,기술일까 정신일까

이제나저제나 조마조마 가슴 졸이며 걱정하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이 그린 작품(?)이 경매에서 비싼 값에 팔렸다는 소식.

인공지능이 그린 '에드몽 벨라미의 초상화'가 지난 10월 25일 세계 3대 경매사 가운데 하나인 크리스티에서 43만2500달러에 팔렸는데, 이 낙찰가는 애초 예상한 가격의 40배가 넘는 고액이라고 한다.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제작한 초상화가 경매에 나와 팔린 것은 그림 경매 250년 역사상 처음이라고.

화제의 그림을 사진으로 보니 제법 그럴듯한 초상화다. 굳이 작가를 따지자면, 프랑스 파리의 청년 3명으로 이뤄진 예술공학단체 오비우스(Obvious)가 개발한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이 작가인 셈이다.

이 인공지능이 14~20세기의 그림 1만5000여 작품을 '생성적 대립네트워크(GAN)'라는 기술을 사용해 학습한 끝에 이 작품을 그려냈다고 한다. 데이터를 학습해 초상화의 규칙을 이해한 후 새 이미지를 직접 그려냈다는 것이다.



나는 '컴퓨터 장님'이라서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그린 벨라미 가족 그림 시리즈 11개 작품 가운데 하나가 이번에 경매에서 팔렸다는 이야기다. 모르니까 더 무섭다.

어쨌거나 이 정도 실력이면 벽에 걸어놓고 감상하기 좋은 장식용 그림이나 그럴듯한 추상화를 그리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실력이 더 향상된다면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밥숟갈을 놓아야 할 판이다. 극히 일부의 특출한 작가들이나, 끊임없이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화수분처럼 쏟아내는 천재나,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화랑의 총애를 받는 작가들이나 겨우 살아남을까?

뉴욕타임스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전통 예술 시장이 AI 예술에 본격적인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무슨 소리인가?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판에 이건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인 셈이다.

그동안 원숭이나 돼지, 코끼리 같은 동물들이 그린 작품(?)이나 로봇 화가의 작품이 간간이 소개되곤 했지만, 그저 호기심 수준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기계가 생산한 그림이 이렇게 비싼 값에, 그것도 권위 있는 경매에서 공식적으로 팔린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이건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미술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미술은 단순한 기술인가? 정신적 가치나 예술성이란 무엇인가? 창조란 정말 가능한 일인가? 예술작품, 제품, 상품은 어떻게 다른가? 등등의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들… 더 파고 들어가면 과연 예술이란 필요한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미술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고, 작곡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세상이다. 그것들이 조심스러운 실험 단계를 넘어서, 시장에서 힘을 가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참으로 복잡해질 것이다.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매우 좁아지거나 아예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이건 예술가들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정신과 전문의 꾸뻬 박사의 지혜를 믿으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그리고 쓰고 작곡하고… 그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행복을 위한 깨달음: "당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슬픈 일은 너무 오랫동안 생각하지 말라."

아 슬프고 답답하다.


장소현 / 극작가·시인·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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