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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생각의 부재'…욱일기와 아이히만

LA한인타운 한복판 로버트케네디커뮤니티스쿨(RFK) 건물에 그려진 '욱일기' 문양을 놓고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한인사회가 이를 발견하고 학교 측에 항의했고, 벽화를 그린 뷰 스탠턴이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나이트라는 예술 비평가가 개입했다. 그는 LA타임스 13일자 칼럼을 통해 "개탄스럽다"고 했다. 나이트는 "한인단체의 공격으로 RFK스쿨 외벽 벽화가 사라지게 됐다"며 "한인단체가 예술의 순수성을 외면한 무지를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벽화의 배경인 '광채(sunburst)'는, 욱일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RFK스쿨에 로버트 케네디 초상을 벽화를 그린 화가 셰퍼드 페어리는 "욱일기 문양을 없앤다면, 케네디 벽화도 지우겠다"고 거들었다. 나이트의 '예술의 순수성, 독립성' 의견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일정부분 맞다. 욱일(旭日)은 아침에 떠오르는 밝은 태양일 뿐이다. 이는 순수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예술작품이 들어갔다고해서 그 깃발이 예술작품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모든 깃발은 정신과 역사를 담고 있다. 시인 유치환이 말했든,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그 아우성은 때론 한 단체의 정신이고, 때론 한 군대의 정신이며, 때론 한 나라 국민의 정신이다.



욱일기는 과거 일본 제국이 아시아 병합 및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그 깃발이다. 1870년 메이지 정부에서 일본 제국의 국기로 정식 채택됐고, 1889년 일본 제국 해군 함대의 군기로 정해졌다. 하나로 단합해 힘차게 차오른다는 본래 뜻은, '침략과 전쟁'으로 왜곡돼 역사적 사실(事實)로 담겨있다.

과거 독일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 문양이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게 된 것은, 그 안에 정신과 역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문양은 아리안(Aryan) 인종우월주의라는 정신과 제2차 세계대전의 침략, 살육의 역사가 담겨있다. 만일 학교 벽화에 하켄크로이츠 문양(또는 불교의 '卍')이 그려져 있다면, 비평가 나이트는 뭐라고 했을까. '하켄크로이츠는, 나치기가 아니다'라며 이 문양은 옛날부터 전세계적으로 '희망과 행운의 상징이었다'라고 말했겠는가.

아돌프 아이히만. 나치 유대인 이주과장으로 유대인을 유럽 각지에서 폴란드 수용소행 열차로 이송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합법적 선거에 의해 정권을 잡은 히틀러의 지시에 성실하게 순응한 공무원. 결과적으로 그는 수백만 명을 죽였다. 아이히만은 전후 재판정에서 "당시는 전쟁 중이었고 나치 상부에서 지시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재판을 지켜본 사회학자 한나 아렌트는 '저렇게 평범하고 근면한 사람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괴물'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렌트는 부당한 명령이라도 해도 한 번 받아들이면, 비판 없이 그 명령을 수행하게 된다는 연구결과를 밝혔다. 그러면서 아이히만의 유죄 근거를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부재'라고 결론졌다.

예술 사고(思考)는 복잡하고, 그 표현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희생된 인류 자체를 표현할지언정, 침략의 총부리와 그 깃발을 아름답게 그리지는 않는다. 비평가 나이트와 화가 페어리는 극동 아시아 중국과 한국에서 세워진 일본 제국주의 깃발의 잔혹함에 무지했다. 벽화의 주제가 아니라고 해도, 그 욱광(旭光·sunburst)만 봐도 치를 떠는 인류가 있다는 것에 무지했다.

'생각의 부재'는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류의 아픔을 위로하지 못한다. 뷰 스탠턴의 벽화 제거 결정에는 다행히 생각이 담겨있다. 스탠턴은 "예술가의 의도 및 진정성과 달리, 커뮤니티의 아픈 과거를 들추고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김석하 논설위원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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