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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고민해 봐야 할 '선교적 교회'

[LA중앙일보] 발행 2019/01/24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1/23 19:17

몇해전부터 한인 교계에서 유독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용어가 화두에 오르고 있다.

최근 한 대형교회에서 사역하던 목회자는 이 개념을 토대로 인근 지역에 개척을 시도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이 용어는 1990년대 미국 교계에서 처음 등장했다. 교회 본질에 대한 고민과 기존 제도권 교계에 대한 반성에서 일종의 대안 개념으로 생성된 용어였다.

기본 핵심은 건물에 갇힌 교회가 아닌, 공동체와 사람에 방점을 찍는다. 쉽게 말해 교인(성도)이 교회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선교적인 삶을 살아서 그 영향력이 교회 외 영역 또는 커뮤니티까지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개념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회 또는 교인이 본래 소유해야 할 상식들이다. 특히 한인 교계에서는 이제서야 이 용어가 각광을 받아 너도나도 마치 답을 찾은 것 마냥 여기는 현상은 상당히 의아할 정도다.

그동안 기독교가 주창해 온 '복음'의 광대한 의미는 내부(교회)에서만 통용 또는 이해됐다. 교회의 존재성과 역할이 외부까지 뻗지 못하고 국한된 건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이제라도 그 현실을 직시해 타파하겠다면 다행이지만 마치 오아시스를 찾은 것 처럼 흥분할 필요는 없다.

물론 해당 용어에 담긴 개념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때론 대중은 구호나 특정 단어에 좀 더 꽂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를 함축해서 담아내는건 상황에 따라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한인 교계가 이를 수용하겠다면 고민해봐야 할 지점은 많다. 일단 이민 사회는 민족적 특수성을 지녔다. 그 안에서 존재하는 이민 교회가 선교적 교회를 추구할 때 그 개념과 영향력이 특정 민족과 커뮤니티에만 국한된다면 한계다.

이민 사회 지형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한계를 넘어서려면 결국 다인종으로 구성된 사회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고 소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를 한인의 시각에서만 해석하는건 다양한 관점을 하나의 잣대로 가늠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미 한인 사회 자체만 봐도 1세와 2세간에 언어, 문화, 가치관 등의 괴리가 생겨나고 있고 이를 타 커뮤니티, 심지어 주류사회로까지 확장시켜보면 많은 부분에서 '선교적 교회'에 대한 역할과 접근 방법에는 분명 심도있는 고민이 요구된다.

게다가 교회가 생존하기 위한 토양이 점점 열악해지는 환경에서 이 용어는 자칫 또 다른 성장과 세력 확장을 위한 도구로 오용(이미 그러한 현상도 보이지만)될 수 있다.

실제로 용어에 담긴 개념들을 교회로 이식하기 위해 주로 언급되는 요소를 보면 '선교적 교회'에 맞춘 설교, 예배, 훈련 프로그램 등 상당히 원론적인 것들이다. 분명 그러한 요소도 중요하지만, 자칫 신앙적 열정만 앞서 정작 그 역할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전문성이나 수행 능력을 갖추는데는 소홀할 위험이 있다.

게다가 체질 변화를 위해 결국 목회자가 '선교적 교회'의 비전을 갖고 교인을 끌어가야 한다는 게 중론인데, 이 역시 아직도 담임 목사 중심 또는 의존적인 한인 교계의 구조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을 두고 고찰 없는 교회론 추구는 부정적 의미에서 또 하나의 '크리스텐덤(christendom·기독교 왕국)'을 만들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교회 또는 교인이 마땅히 지녀야 할 개념을 미사여구를 붙여 복잡하게 풀어놓을 이유는 없다.

오늘날 시대가 교계에 바라는 건 상당히 단순하고 명료하다. 기독교의 회복과 영향력 발산은 그럴싸한 용어 생성이 아닌, 기본과 상식을 지키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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