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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철수 속병클리닉] 병원에 가서 얻어 오는 병?

사람들은 "한번 가봐야 하는데 왠지 두려워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올까…" 아니면 "난 병원 분위기가 영 맘에 안 들어. 왠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거든" 등등의 이유로 병원 (Doctor's Office)에 가기를 꺼린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의사를 만나면 병이 하나 더 생긴다고까지 말한다.

늘 건강했던 47세의 이 씨는 한 달 이상 윗배가 불편해서 병원을 찾게 되었다. 정말 가기 싫은 병원이었지만 주위 가족이 권하는 바람에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간단한 상담과 신체검사를 한 후 의사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내시경 검사를 해야 되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온 이 씨는 그날부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같은 교회에 다니는, 나이가 마흔도 안 된 교인이 위암에 걸려 고생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 기억났다. 의사가 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한 이야기는, 위에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2주일 후에 내시경 검사를 받을 때까지 이 씨는 그야말로 노심초사하며 직장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만약 의사가 좀 더 조심스럽게 말을 했더라면, 아니 환자의 초조한 마음 상태를 읽고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생각했더라면, 그렇게 무심코 던진 말이 환자에게 큰 마음고생을 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의사 자신도 좀 더 조심했을 것이다.

어떤 환자들은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왔다가 병을 하나 더 얻어 간다고도 한다. 다시 말해 하나의 '의원 병'을 얻어 가는 셈이다. 심각한 질병이 없는 상태인데 병원에 한 번 왔다 가면서 그야말로 병이 생긴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

우리가 병원을 찾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아무 불편한 증상 없이 정기 검진을 위해 찾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몸에 이상을 느꼈거나 불편해서이다. 하지만 웬만하면 피하려고 하는 것이 병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야말로 오만 가지 생각 끝에 찾는 병원(Doctor's office)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 끝에 찾아간 병원이건만 어떤 이유든 간에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경솔하거나 배려가 부족한 대접을 받았을 경우, 가뜩이나 불안해하는 환자는 어떠한 심정이겠는가?

병원은 환자를 진료하는 곳이다. 모든 진료는 환자와 의료진과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만남에서 원만한 의사소통과 상담을 토대로 환자의 문제점을 풀어 나간다. 그러나 오늘날의 임상은 과연 이런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 누구 말로는 세 시간 기다렸다가 3분 진료를 받는다고 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원만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의사는 무엇을 토대로 환자의 문제를 진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다 보니 진료의 많은 순서들이 디지털화되었고 의사가 환자와 대면하는 것은 더욱더 힘들어져 가고 있다. 복잡한 현대 생활 속에서 지치고 힘든 환자는 의사에게 더 가까이 가려 하는데 의사는 환자에게서 점점 더 멀리 떨어져 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의사와 병원의 기능은 지나치게 사무적이고 기계화되어 가고 있다.



의료진의 첫 임무

이러한 현실에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물론 1, 2년에 한 번 피검사라도 해봐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 문을 들어서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병원에 오기까지 적지 않은 생각과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주위의 어떤 사람이 갑자기 대장암으로 수술 받은 것을 알고 나니 자신도 갑자기 속이 불편한 느낌이 온다든가, 잡지에서 어떤 병의 증세를 읽고 난 후 자신의 증세가 그와 똑같다는 생각을 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설 때 환하게 웃는 경우보다는 다소 위축되어 있는 듯한 기분으로 들어설 때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병원 문을 들어서는 사람들의 표정은 매우 다양하다. 평온한 듯 웃으면서 들어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왠지 쑥스러운 표정으로 안 올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왔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다. 오기 싫은데 그야말로 가정의 평화를 위해 누구 등쌀에 밀려 바쁜 시간 쪼개 가며 반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도 있고 노심초사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들어오는 사람 등 모두가 가지각색이다.

의료진으로서 환자들의 이러한 표정 읽기는 구체적인 진료에 앞서 그들의 마음과 속을 진단(?)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이것은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좋은 방법으로, 진료의 첫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의사소통도 그들의 속마음과 심정을 읽고자 하는 따뜻한 관심 아래 원만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환자 대 병원의 딱딱한 사무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한 열린 대화를 통해서만이 이상적인 임상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병원의 자세

현대 임상은 기술 중심의 의료에서 휴머니즘이 넘치는 의료로 전환되어야 한다. 즉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뜻과 마음이 없는 의료진은 제구실을 다할 수가 없다. 의료진에게는 환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우러나야 한다. 그리고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인내와 꾸준히 치료해 주는 정성을 터득해야만 한다. 또 병원은 환자들에게 안정감 있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이야말로 진료를 돕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병원의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 들려오는 기분 좋은 음악과 눈앞에 놓인 아름다운 꽃들은 아픈 사람들에게 커다란 생명력과 희망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환자를 이렇게 속 편하게 앉아 기다리게 할 수 있다면, 그 병원은 벌써 그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자세가 갖추어져 있다고 할 것이다.




현철수 박사=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생물리학을 전공하고 마이애미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조지타운 의과대학병원에서 내과 레지던시 후 예일 대학병원에서 위장, 간내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하고 많은 임상 활동과 연구 경력을 쌓았다. 로체스터 대학에서 생물리학 박사,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마쳤다. 스토니브룩 뉴욕주립 의과대학과 코넬 의과대학에서 위장내과, 간내과 교수를 겸임했다. 재미 한인의사협회 회장, 세계한인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뉴저지주 의료감독위원회 위원이자 아시안 아메리칸 위암 테스크포스(Asian American Stomach Cancer Task Force)와 바이러스 간염 연구센터(Center for Viral Hepatitis)를 창설해 위암 및 간질환에 대한 캠페인과 나아가 문화, 인종적 격차에서 오는 글로벌 의료의 불균형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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