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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월급 3.1%를 그들에게 보내며

기특했다. 가서 모두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그러면서 부끄러움도 슬쩍 밀려온다.

UCLA 캠퍼스에서 한국과 한국 문화가 좋아서 학우들에게 알리려고 만들었다는 동아리 '한울림'의 한 학생과 전화 인터뷰를 마친 직후였다. 그러면 안 되지만 미국 생활이 오래되고 '언론사 밥'을 먹다 보니 웬만한 이벤트와 움직임에 큰 감동을 받지 못하는 '무딘 가슴'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놀라움은 더 크게 다가온다. 특히 한국의 모습, 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상황은 선입견을 장착하고 보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대충 "그러면 그렇지 뭐"하거나 "말했잖아, 하루이틀이야…뻔하지 뭐"하는 식의 코멘트가 나오기 일쑤다.

하지만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어린 학생들이 100년 전 유관순 열사를 기억하고, 제 손으로 3·1절 행사를 준비한다고 부산하단다. 우리 어른들은 일제에 항거한 선열들의 용기를 기억하기보다는 "왜 우리는 일본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나"라는 식의 '현재적 회한'으로 시간을 보내온 것 같은데, 100년 전 외침을 캠퍼스 광장에서 다시 재현하겠다는 아들·딸 또는 조카같은 나이의 청년들의 목소리에 부끄러워질 수 밖에 없다.

한울림의 행사 내용을 보니 형식과 의전, 인사말에 익숙해 본질이 쉽게 잊혀지는 주요 한인단체들의 그렇고 그런 행사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유관순 열사의 후손들을 어렵게 찾아내 단상을 내어주며 학생들이 100년 전 독립운동의 의미를 고민하도록 했고, 치열한 여성 독립운동가를 그린 영화도 학우들을 초대해 함께 보겠단다. 'BTS'와 '워너원'만 찾던 한류 애호가 학생들도 100년 전 독립투사 안옥윤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순간이 될 것이다.



한울림의 3·1절 행사 준비 소식을 전해준 학생은 UCLA 캠퍼스 분위기도 솔직하게 전달했다.

"사실 일부 회원들은 행사를 이토록 거창하고 길게 하면 이를 불편하게 보는 교수와 학생들도 있을 것이라며 걱정을 했어요. 하지만 역사를 되새기는 일을 눈치보거나 계산하면서 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의 독립운동 역사는 다른 민족들의 유구한 역사처럼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기억하고 계승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인 사회와 한인 1세 어른들도 많이 찾아와주시고 관심 갖고 격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매년 3월 1일이면 국내외 각 지역에서 각급 외교 기관 및 단체들이 3·1절을 기념하는 행사를 연다. 하지만 주립대학 캠퍼스 내에서 공개적으로 학생들을 초대해 행진까지 벌이는 올해 행사는 UCLA의 한울림의 행사가 유일한 듯 하다. 게다가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남가주에 소재한 대학 캠퍼스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가 더욱 안전하고 성공적이며, 큰 관심을 받는 행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이민 1세들도 같은 심정으로 물심양면의 지원을 내놓길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어른들도 그 동안 조국을 잊고 살았거나, 비관적으로 또는 조소적으로만 봐 왔다면 이들 청년들의 기상을 보며 한번쯤 바꿔 생각해보면 어떨까.

인터뷰를 마친지 며칠이 지났지만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와 미묘하게 섞여버린 부끄러움과 뿌듯함이 결국 행동을 부르게 된다.

"그래 이게 내가 너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이라면 왜 안되겠니."

이달 월급의 3.1%를 학생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고맙다는 편지도 함께 말이다.


최인성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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