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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법률칼럼] 맛과 향기에도 저작권이 있나

장준환/변호사

인간의 오감을 모두 자극하는 요리는 종합 예술로 불린다. 요리의 핵심은 ‘맛’이다. 미식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독특한 맛을 즐기기 위해 긴 줄을 서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장거리 여행에 나서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탁월한 맛들에 저작권이 부여될 수 있을까? 맛의 저작권을 다루는 흥미진진한 재판이 진행된 적이 있다.
네덜란드의 치즈 제조사 레볼라 헹엘로(Levola Hengelo)는 경쟁사인 슈밀드 푸드(Smilde Foods)를 대상으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슈밀드의 위테 위븐카스(Witte Wievenkaas) 치즈가 자사의 치즈 제품 헥시카스(HEKS’NKAAS) 맛을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것이다.

레볼라 헹엘로는 음식은 일종의 매체이며 여기에 담긴 ‘맛’ 역시 창의적인 표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EU가 제품의 질감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한 사례를 들며 맛에 대한 저작권 보호를 주장했다. 반면 슈밀드는 맛은 객관적인 실체가 없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며 창조성을 부정하였다.

네덜란드 법원은 다소 모호한 판결을 했다. 맛에 대해 저작권을 부여할 여지가 있지만, 레볼라 헹엘로가 저작권을 소유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레볼라 헹엘로는 이에 불복했고 이 사건은 유럽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의 판결을 기다리게 되었다. 2018년 11월 13일 역사적인 결정이 나왔다.

결론은 맛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학, 회화, 영화, 음악 등과 달리 음식의 맛은 객관적이고 세밀하게 판별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또한 맛보는 사람, 나이, 음식에 대한 선호도, 환경, 먹을 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덧붙였다.


맛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공식적인 판례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향기는 어떨까? 여기에 대한 판례도 있다. 2006년 5월 프랑스의 유명 화장품 회사 ‘랑콤’이 자사의 향수 제품 ‘트레조’의 향기 저작권을 침해 당했다며 경쟁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다. 결과는 패소였다. 2013년 12월 프랑스 민사 최고 법원은 향기는 저작권법이 규정하는 창작물이 아니며, 명확하게 식별할 수 없기에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맛과 향기는 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한다. 베른협약에서도 맛과 향기를 저작물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비슷한 맛과 향기를 가진 제품이 나오더라도 저작권 침해를 인정받을 수 없다. 하지만 명백하게 식별할 수 경우라면 다르다. 음식과 향수의 제조 기법 등이 특허 등록되었는데 이를 도용했다면 저작권 위반이다. 맛과 향기 그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특허에 대한 침해가 된다. 제품명, 디자인, 용기 등을 도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창조적 맛이나 향기를 도둑맞았다고 느낀다면 독특한 제조 기법이 도용되었음을 밝히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맛과 향기의 고유성을 식별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면 창조물로서 맛과 향기가 저작권을 행사할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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