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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세대교체 한인단체들의 고민

로버트 할리, 이다 도시, 샘 해밍턴, 다니엘 린데만…. 이름만 보고 금세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면 아마도 다음에 무슨 말을 하려는 지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렇다. 이들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타국 출신의 방송인이다. 조금 더 말하자면 '한국 사람들보다 한국어를 더 잘하는 외국인'이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한국 TV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이 단순히 인터넷의 발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 TV를 자주 보면서 새삼 놀라는 일이 있다. 주로 외국인들이 나오는 토크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끈 '비정상회담' '미수다(미녀들의 수다)' 등을 봤다면 출연자들의 한국어 구사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의 TV 출연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출연자들이 많고 다양해진 데다, 대부분이 20~30대 청춘들이라 더욱 놀랍다. 더욱 당황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한국 사람들도 제대로 알기 힘든 말을 거침없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한국 문화와 역사까지 꿰뚫고 있는 장면에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민온 지 10~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며 한숨을 내쉬는 많은 한인들 영어실력에 비하면 이미 견줌 거리가 아니다. 한국에 오래 살아서 그럴까, 한국어 공부만 열심히 해서…, 아니면 처음부터 언어 습득에 타고난 천재들이 아닐까. 그렇다고 그들이 한국어를 잘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모국어인 영어, 불어, 독일어 구사에 어눌해 진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자국 출신들 모임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모국어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최근 한인 비즈니스 단체에도 젊은 층 영입이 늘면서 이민 1, 2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1세대들은 영어가 어렵고, 2세대들은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은 탓이다. 그동안은 1세대가 주도한 단체라 모든 일을 한국어로 진행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1세대의 은퇴가 가시화하고 2세대 수혈이 간절한 시점이 되다 보니, 언어가 중요 이슈로 대두하고 있다.

이미 여러 단체는 공식 석상에서 2세대의 영어 사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1세대들에게는 불편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센스 있는 2세들은 '영어 반, 우리말 반'하면서 이해를 돕기도 하지만, 그 역시 쉽지는 않다. 결국 말 때문에 단체 활동을 포기하는 2세대들도 많다고 한다.

"단체 활동을 하고 싶어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먹지 못하겠고, 어쩌다 말이라도 할라 치면 상대가 제대로 이해하는 지 알 수 없으니, 그런 고문도 없을 거예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한 한인 비즈니스 단체는 2세대들 활동을 권장하는 차원에서 1세대들이 완전히 물러나기로 했다고 한다. 단체 활동에 참여할 2세대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가 '공식어로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이었고, 어차피 물러날 때도 됐으니 이 참에 차세대에게 단체 활동을 완전히 넘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2세들 참여 없이는 단체 유지 자체가 힘들어진 마당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마냥 환영할 일만도 아닌 것 같아 찜찜하다.

'미국이고 미국에서 살면서 벌어지는 일이니 미국말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일견 당연해 보임에도 무조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거기에 한인이라는 주체가 끼어 있음이겠다.

30~40년 된 한인 단체에서 일 해온 1세대의 경험과 언어와 문화, 신지식으로 무장한 2세대가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을까. 1세대들도 '한인 단체이니 적어도 회의석상에서는 우리말을 하세요'라고 강변만 할 것도 아니고, 2세대들도 단체 활동을 통해 우리말 능력을 키우는 기회로 삼는다면 일거양득이지 않겠는가. 현미와 현미찹쌀이 섞인 '반반미'가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다던데.


김문호 / 경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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