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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흩날리는 꽃씨 되어

이기희
이기희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4/23 21:45

봄에는 민들레 꽃씨 되어 그대 곁에 날아가리라. 후 불면 허공에 흩어지는 풀잎 같은 생명일지라도 곁가지에 붙어 그리워할 수 있다면 그대 곁에 다가가리다. 모진 목숨 살아있기만 하면, 무거운 생의 커튼 제치고, 무심한 세월 억울해 하지 않고, 잊어버린 날들 탓하지 말고, 그대 창가에서 찬란한 봄을 노래하리.

민들레는 들꽃이다. 모진 풍파와 험난한 세월에도 생명 끈 놓지 않는다. 겨울동안 튼실한 땅 속 뿌리로 지내다가 이듬해 봄이 오면 다시 잎과 꽃을 피운다.

민들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다년초)로 원줄기는 없고 잎이 뿌리에서 뭉쳐 나와서 사방팔방 옆으로 드러눕는 꽃이다. 키 작은 앉은뱅이 꽃이라서 밟아도 잘 죽지 않는다. 죽어도 살아난다. 어릴 적엔 동무들과 민들레 꽃씨 따서 호호 불며 동구 밖 흙담길을 쫒아다녔다. 할미꽃 닮은 민들레 씨는 할머니의 서리 내린 흰머리처럼 바람개비로 창공에 흩날렸다. 푸르른 하늘 뭉게구름 속을 나르는 민들레 꽃씨 따라 유년의 꿈도 무중력으로 하염없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기희’가 돌아왔다. 다시 칼럼이 연재된다. 마지막은 슬펐다. 늘 그랬다. 시카고 중앙일보가 문 닫는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읽을 때처럼 가슴 저렸다. 늦었지만 용감한 새 출발을 축하드린다.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나. 칼럼쓰기 시작 한 지도 어언 14년. 시카고를 출발, LA 뉴욕 등 타 지역 신문에 칼럼이 실렸다. 장편소설 두 권과 자전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이 출간 된 후, 칼럼 써 본 경험이 없던 내가 시카고 중앙일보 권유로 2006년부터 불모의 땅에 깃발 꽂는 심정으로 칼럼 쓰기를 시작했다.

시카고는 내 칼럼의 고향이다. 역사는 하루도 건너뛸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한 주도 빠짐없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몸이 아플 때나, 어머니를 보내드린 날도 칼럼을 썼다. 칼럼은 내 인생의 겸허한 기록이고 작은 역사책이다. 눈 감을 때까지 칼럼 쓸 생각을 한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른다. 뒤돌아 보지 않고 눈물 흘리지도 않는다. 놓쳐버린 날들을 안타까워 하지 않고 되돌릴 수 없는 것들과는 후련하게 작별하라 이른다. 꽃이 피고 지듯 열림이 있으면 닫힘이 있다. 인생은, 닫힌 문도 열심히 두드리면

언젠가 열린다고 비밀번호를 가르쳐준다. 성실과 인내, 꿈이 패스워드다.

사는 게 힘들다고 불평 말고, 세상 잡사에 연연하지 말고, 원망도 후회도 없이 그냥 떠나 보내라고 가르친다. 소돔성을 되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된 여인 흉내 내지 말고 추억의 공책에 눈물 한 방울, 동그라미 하나 그려 넣고 잊으라 다독인다.

눈 한번 깜박이는 사이 세월은 쏜살같이 달려간다. 후회와 뉘우침 대신 약속과 희망 붙잡고 새 날 새로운 세상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라 재촉한다. 노력한 만큼 못 건져도 절망 말고. 엉망진창 망쳐도 파토 냈다 타인에게 손가락질 하지 말고, 반칙 안 했는데 날아온 옐로카드에 분노하지 않고, 약속은 사랑처럼 그냥 믿고.

인생에는 해고장이 없다. 죽고 사는 일 외에는 짤리지 않는다. 그래도 사는 게 슬프고 아파서 서로 짜르고 짤린다. 버리고 팽개치고 후회하고 다시 만나고 절망하고 또 헤어진다. 눈물과 회환은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나는 새벽 이슬.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만남과 작별은 같은 말이다. 너를 보낼 수 없는 나의 기막힌 사랑처럼, 보내도 너는 내 곁에 있다. 민들레 꽃씨 후후 불어 바람에 날리며 그대와 함께했던 시간들, 그 찬란하고 슬픈 봄을 당신 곁으로 보낸다. (윈드화랑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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