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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5·18과 민권운동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1일 뉴욕에서도 열렸다. 올해로 서른 아홉 해를 맞았다.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아래 열리던 기념식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 집권 정당 대표와 총영사, 평통 회장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옛날에는 5.18 기념식에만 가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걸렸다. 미국에서 해마다 기념식을 열었던 단체 회원이었던 탓에 한국으로 돌아간 뒤 잡혀서 갇힌 이도 있었다. 이제 그런 일은 없다. 1981년 뉴욕에서 처음 열렸던 기념식 사회를 맡았던 최한규씨도 이날 왔다. 그는 이제 70이 훌쩍 넘어 은퇴를 했다. 그는 첫 기념식에서 사회를 본 탓에 오랜 기간 욕을 먹었다고 한다. 이젠 그다지 욕도 먹지 않는다. 많이 달라졌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기념식을 마무리하며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눈시울은 서른 아홉 해가 지났어도 뜨겁다.

1980년대 욕을 먹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그 뿌리는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고 이제 큰 나무가 돼 한인사회 민권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5.18 대동정신을 이어받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제대로 살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거의 모두가 1세였던 그들은 이제 1.5세, 2세들까지 함께 아우르며 반이민 정책에 맞서고, 선거 참여운동 등을 통해 정치력을 키우고, 어려운 한인들을 돕는 봉사를 하고 있다. 5.18이 미국 땅에 남긴 열매다.

그렇다고 이들이 '어머니의 땅'을 잊은 것은 아니다. 최한규씨는 지난 4월 27일 맨해튼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손잡기 뉴욕대회'에서 옛날에 함께 일했던 단체 출신들을 30여 명이나 만났다고 했다. 물론 그날 대회를 이끌었던 사람들 가운데에도 같은 뿌리에서 자란 한인들이 있다.

5.18은 한인사회에도 이렇게 큰 힘을 줬다. 올해 광주의 한 방송에서 뉴욕에 취재를 온다. 5.18 특별기획으로 '광주의 마지막 수배자'로 불렸던 고 윤한봉 선생과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항쟁 지도자였던 그는 5.18 뒤 미국으로 망명해 한국 민주화 운동과 함께 한인들의 민권운동 참여를 북돋은 길잡이였다. '한 손은 조국, 또 다른 한 손은 동포사회를 위해'라는 구호를 내걸고 한인들을 이끌었다.

그때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이 이제 50~70대가 됐다. 많은 이들이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후배들이 그 뿌리를 이어 줄기를 다듬고, 가지를 뻗치고, 열매를 맺어 가고 있다.

오늘 당신이 플러싱의 한 단체를 방문해 어려움을 말하고, 도움을 받았다면 당신은 바로 그 후배들의 손길과 닿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십 년이 흘러도 늘 5.18을 잊을 수 없다.


김종훈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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