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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잘 머물다 갑니다"

두꺼운 먹구름을 뚫고 치솟으니 흰구름 띠가 또 있다. 그렇게 두 구름 띠를 벗어나니 푸른 하늘에 태양이 눈부시다. 아래는 구름바다가 말 그대로 만물상을 연출한다. 두 시간 남짓의 비행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쯤 해서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내려준다.

찾아간 빈집이 을씨년스러워 얼른 들어서기가 망설여지는데 이 밤에 일곱 식구가 어이하랴 싶어 마음 잡고 들어가서 방문을 모두 연 다음 전등을 있는 대로 밝혔다. TV도 켜고 부엌 물도 틀어보니 겨우 사람 사는 집 같아진다. 그렇게 시작한 일주일이 넉넉할 듯하더니 하루처럼 금새 지나 내일 아침엔 집을 비워주고 떠나야 한단다. 겨우 익숙해져 한동안 살아보고 싶기도 한 마을인데 말이다.

둘러보니 탁자 위에 방명록(guest book)이 있다. 새해 들어 다녀간 가족들이 한마디씩 적어놓은 글들이 빼곡하다. 거의가 잘 있다 간다는 감사의 글이다. 만나지도 마주치지도 못한 낯선 언어의 낯선 얼굴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어이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 우리 다음에 머물 사람들이 연구할 심심풀이 숙제라도 남겨놓아야 하겠다. "잘 머물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한글로 크게 쓰고 토를 달았다. "Chi's and Kim's families were here from Los Angeles. May 17 2019."

그렇구나. 머물다 가는구나. 주인인 양 이 집을 잠시 맡아 머물다 가는구나. 줄자 옆구리에 차고 머리에 맥고모자 얹어 놓고 털털거리는 픽업 트럭에 걸터앉아 공사장을 누비던 카우보이가가 머물다 간다.



삶도 여행이 아니겠는가. 종착역을 모르는 미완성의 과정을 달려가는 여행. 이 여행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물처럼 흘러와 우리의 대를 이어주고 흘러간다. 손자까지 일곱 식구 삼대가 편안히 머물게 해준 포틀랜드 옛집에 두 손가락으로 사랑의 표시를 보낸다.


지상문 / 파코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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